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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전북방문의 해, '1400년 전 백제인을 만나다'
익산시민뉴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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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3.02  15: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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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소통의 시작이고 종결점이다. 소통이 화두인 최근 지리산둘레길, 제주올레 등 수많은 길들이 뜨고 있다.

그럼 익산에는 어떤 길이 있을까?!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여 걸쳐 조성된 ‘백제의 숨결! 익산 둘레길’이 있다. 익산의 다양한 역사문화탐방, 체험, 휴양이 어우러진 이 길은 함라산길, 강변포구길, 성당포구길, 무왕길, 미륵산길, 용화산길 등 6개 코스 총연장 99km이다.

한번에 이 길에 숨겨진 매력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

익산의 역사와 자연, 선조의 삶과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짚어보는 데는 조금 느린 호흡이 필요하다.

1부. 발아래 산들강이 놓이다 _ 함라산길

2부. 익산은 포구다 _ 강변포구길 & 성당포구길

3부. 익산은 무왕의 도시다 _ 무왕길

4부. 1400년 전 백제인을 만나다 _ 미륵산길 & 용화산길

4부. 1400년 전 백제인을 만나다 - 미륵산길 & 용화산길

# 타임머신 타고 1400년 전 백제인을 만나다

“금마,

마한, 백제의 꽃밭

... ...

백성들이 모여

합장,

묵념.

그들은

35년의 세월

머리에 돌이고

염불 외며

농한기

3만 평의 땅에

미륵사,

미륵탑, 세웠다.“

신동엽 시인은 그의 서사시 금강에서 익산을 ‘마한, 백제의 꽃밭’이라고 노래했다.

마한백제고도 익산의 미륵산길과 용화산길을 따라가다 보면 미륵 불국토를 꿈꾸었던 1400년 전 익산 백제인들의 삶과 정신의 향기를 시나브로 느낄 수 있다.

미륵산길은 간재선생길(미륵사지~간재선생 묘소), 아름다운순례길(미륵사지~간재선생 묘소), 복숭아길(간재선생묘소~장암마을), 정정렬명창길(장암마을~미륵산성), 기준고성길(미륵산성~구룡마을), 대나무숲길(구룡마을~미륵사지) 등으로 연결되는 총 18km이다. 소요시간은 6시간 20분이다.

용화산길은 용화세상 여는길(서동공원~대나무숲길), 소세양신도비길(대나무숲길~편백나무숲 쉼터), 장보러 가는길(편백나무숲 쉼터~가람 이병기선생 생가) 등 7km이며 소요시간 2시간 20분이다.

# 백제인의 꿈 용화세상을 그리다 - 미륵사지

금마에서 마를 캐며 생활하고 있던 서동이 백제 제30대 무왕으로 등극하면서 미륵사가 창건되고 왕궁이 건설되었다.

미륵사는 일반 백성들까지 미륵불이 세상에 출현하셔서 한량없는 중생을 해탈시키는 용화세상으로 인도하겠다는 백제불교 미륵신앙의 구심점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그 사상을 가람에 구현하고 있다.

“미륵이 이승에서 세 번 설법을 마친 후에 극락세계로 화한다.”하여 각기 설법을 전파할 공간을 만들다보니 대웅전이 세 개인 3금당이 되었고 그 금당 앞에 각기 하나식의 탑을 세워 3탑이 되었다.

세월의 버거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미륵사에 담긴 백제인의 신앙과 삶은 벼락과 비바람에 그대로 씻긴 얼굴로 천사백년동안 자리를 지켜온 미륵사지석탑과 미륵사지 당간지주, 출토 유물에 의해 밝혀졌다.

지난 1980년부터 시작된 미륵사지 발굴조사 결과 1338만 4699㎡으로 규모로 추정되어 국내 최대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2009년 미륵사지석탑 출토 사리장엄을 비롯하여 얼마전 보물로 지정된 금동향로 등 1만 9천여 점에 이르는 귀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1997년 5월에 개관한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에 출토된 유물, 미륵사의 복원된 모형 등이 전시돼 있다.

# 왜? 백배미를 채우지 않았을까 - 아흔아홉 배미 논

아흔아홉 배미 논은 전주 이씨 집안에서 조선시대부터 1960년 초까지 농사를 지었다는 삿갓논(조각논) 이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아흔아홉(99)배미 맨 윗 논 부근엔 옻샘이라는 샘물이 있는데 옻이 탔을 때 이 샘물에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낫는다는 설이 있다.

옛날 부자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99칸(방 99개) 이상을 지을 수가 없었는데 100칸인 궁궐보다 방을 많이 만들 수 없게 했다고 하다. 이런 이유에서 백(100)배미를 채우지 않고 아흔아홉(99)배미 논을 소유했을 거라 추정된다. 1980년대에 변씨 집안으로 소유권이 이전되면서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고 있다. 이제는 숲으로 변해 논이었다고 상상이 안 된다.

아흔아홉 배미 논을 지나면 간재 선생묘소와 장항동마을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이 길은 아름다운 순례길이기도 하다. 키 큰 소나무 길이다. 솔 향이 코끝을 간질이고 사람들이 많이 걸어 길이 반질반질하다. 갈림길에 어김없이 이정표가 있다.

# 조선 후기 성리학의 대가 잠들다 _ 간재선생묘소

간재 전우 선생은 조선후기 성리학의 대가 임헌회의 문하에서 20년간 학문을 닦았으며 1882년(고종19) 관직에 나갔으나 곧 사임하고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했다. 부안, 군산 등 여러 섬을 옮겨 다니다가 국권이 침탈된 후에는 계화도에 정착하여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지냈는데. 돌아가신 후에 증조부 묘소가 있는 이곳 선산에 매장되신 것이다.

선생의 묘소를 둘러본 후 오던 길로 돌아가 죽청 마을로 향했다. 죽청마을은 대밭이 많아서 푸르다 하여 '대파라니→죽청' 이라는 설과 또 바로 옆 골짜기 이름이 '큰골' 이고 예전에 널찍한 곳을 대판이라 했으니 그런 뜻의 '대판이' 라는 설도 있다. 인근에 태봉사와 미륵산 자연학교 등이 있다.

# 고조선 준왕이 쌓았다 - 미륵산성(기준성)

미륵산 산정의 우제봉에서 동쪽으로 둘러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이 산성은 고조선의 준왕이 남하(南下)하여 쌓았다하여 기준성(箕準城)이라고 불린다.

남북으로 강을 끼고 있는 미륵산은 신라와 가야를 공격․ 방어하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미륵산성의 총길이가 1,776m로 성문에는 옹성(甕城)을 설치하여 방어에 용이 하게 하였으며 성내에는 몇 개의 축대를 쌓아 계단식으로 되어있어 여기저기 건물지와 우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한반도 최대 규모 대나무 숲이다 - 구룡마을 대나무 숲

전체 면적이 5만㎡으로 한강 이남에서 최대 규모이다. 주요 수종은 왕대이며 일부 구간에 오죽 또는 분죽이라 부르는 솜대가 분포하고 있다. 이곳 대나무로 만든 죽제품은 우리나라 3대 5일장의 하나였던 강경장을 통해 충청도, 경기도까지 판매되었으며 생필품을 만들어 썼기에 생금밭이라 불리기도 했다.

2005년 겨울에 냉해를 입어 왕대가 거의 고사되는 위기를 겪었으나 2006년부터 마을주민과 산주, 지자체, 전북생명 숲 등이 고사된 대나무를 제거하고 생육환경을 개선하면서 복원되는 과정에 있다. 드라마 ‘추노’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 황진이가 사랑한 유일한 남자를 만나다 - 양곡 소세양

한 자로도 마음이 통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것은 치명적인 가시가 있다. 황진이도 그랬다. 뛰어난 재색을 겸비했음에도 반쪽 양반에 여자라는 한계에 갇혀 있던 그녀는 자신을 염모해 상사병으로 옆집 총각이 죽자 스스로 기녀가 되었다.

이후 그녀는 꿈을 펼치지도 못하게 하는 세상 속에서 수많은 기행과 일화를 남기며 ‘송도삼절’로 불린다. 그런 그녀가 정말 사랑했던 남자는 누구였을까?

미륵산 자락의 선비 소쇄양은 송도 기녀 황진이가 잘나간다는 말을 듣고 호언장담을 한다. 아마도 그녀의 마음을 빼앗아 한 달간 갖고 놀다가 차고 돌아오겠다라고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면 사나이 대장부가 아니라고.

그는 황진이에게 ‘‘榴-석류나무 류(유)’라고 오직 한 자로 쓴 편지를 보냈다. 그녀 역시 ‘ 漁 (고기 잡을 어) 한 자로 답장을 써 보냈다.

범인은 쉽게 이해 못할 이 편지 속 내용은 이렇다. 榴의 뜻은 碩儒那無遊‘석유(류)나무유(류)’로 “큰선비가 여기 있는데, 어찌 놀지 않겠는가?”였다.

漁의 뜻은 高妓自不語(고기자불어)로 “높은 기생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나와 놀고 싶으면 네가 와라” 이는 한자의 훈 과 훈 을 합해 한 문장처럼 만든 것이다. 석류나무류 , 고기자불어. 한 눈에 반한 남녀들이 있다면 그들은 한 자로 서로에게 끌렸다. 서로 만난 꿈같은 한달을 보내고 그 둘은 헤어졌다고 한다.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오래도록 서찰을 주고받았다고 전해진다.

이 양곡 소세양의 신도비가 왕궁면 용화리 산33번지, 용화저수지 뒤 북쪽에 위치해 있다.

# 국경을 초월한 사랑이야기가 있다 - 서동공원

서동과 선화공주의 애틋한 사랑이야기와 백제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서동공원은 금마저수지를 끼고 4만 여평의 부지에 조성된 것으로 조각공원과 전망대 등 각종 휴식공간이 있어 놀이와 산책 등 나들이 코스로 적합하다. 금마저수지는 미륵산 정상에서 보면 한반도를 쏙 빼닮았다. 그래서 지도연못이라 부른다.

조각공원에는 무왕상, 서동·선화입상 및 부도, 12지 신상, 기타 조각 작품 등 다양한 조각 작품들이 전시돼 일명 조각공원으로 불리고 있으며 860여 평의 잔디광장을 비롯한 미륵광장, 수변광장, 야외무대는 철쭉 왕벚나무외 다양한 나무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서동공원 내에 마한의 역사와 생활상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마한관이 있다. )* 서동공원 금마면 동고도리 526 ☎ 063-859-4633)

# 국문학계에 큰 별을 만나다 - 가람 이병기 선생 생가

“1921년 7월 23일(토) 맑다. 불교회로 가서 ‘훈민정음’을 베꼈다”

한 줄도 좋다! 4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자신의 생활의 흔적을 남기려고 노력했던 이가 있다. 가람 이병기 선생.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린 이 ‘가람일기’는 평생 동안 국문학 연구에 열정을 쏟은 가람 이병기 선생의 담백한 삶을 그대로 보는 듯 하다.

1891년 여산 원수리 진동마을에서 태어난 가람 이병기 선생은 국문학자이며 시조시인으로 한국 현대시조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긴 분이다.

여산 가람 이병기 선생 생가는 가람이 태어나고 생을 마친 곳으로 지방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었으며 400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수형이 아름다운 탱자나무와 소박한 정자, 화려하진 않지만 수수한 연못, 그리고 초가지붕을 얹은 목조 가옥이 소박하고 검소한 선생의 삶을 잘 담아내고 있다. (* 가람 이병기 선생 생가 여산면 원수리 573번지)

☞ 미륵산길(18.0Km) 도보 6시간 20분

미륵사지- 3.7km→ 간재선생 묘소(간재선생길 1시간 30분)

미륵사지- 2.7km→ 간재선생 묘소(아름다운순례길 1시간) -3.5km→ 장암마을(복숭아길 1시간 20분)-3.5km→ 미륵산성(정정렬 명창길 1시간 20분)-1.8km→ 구룡마을(기준고성길 20분) -2.8km→ 미륵사지(대나무숲길 50분)

☞ 용화산길(7.0Km) 도보 2시간 20분

서동공원 -2.0km→ 대나무숲 길(용화세상 여는길 도보 40분)-1.9km→ 편백나무숲 쉼터(소쇄양 신도비길 도보 40분) -3.1km→ 가람 이병기선생 생가(장보러 가는길 도보 1시간)

익산관광 http://iksan.gojb.net

익산시청 문화관광과 ☎ 063-859-5797

[글 및 사진 제공 : 익산시청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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