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가 지나면서 가을이 다가왔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뜨거웠던 여름을 그냥 보내기 아쉽다는 듯이 아직도 한낮의 기온은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말복치레도 하였고 배추씨를 뿌려야 하는 처서도 내일모레다.

▲ 익산시민뉴스 논설위원(수필가, 칼럼니스트)

이제 가을이면 가장 먼저 한가위가 생각나며, 다음으로는 독서의 계절이라는 단어가 있다. 가을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에 우리 마음도 살을 쪄보자는 뜻에서 독서의 계절이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가을논의 대명사인 벼가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가 숙여지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가을은 선선한 기온과 더불어 독서하기에 좋은 계절인 것은 확실하다. 물론 요즘에야 아무리 춥거나 더워도 독서에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자연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는 것은 비교할 데가 없다. 책을 펼치고 창밖에 아른거리는 황금들판을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풍요로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에 대한 유래는, 여름에 실컷 놀았으니 이제는 제발 책 좀 읽어보자는 계몽차원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면 믿을까 모르겠다. 하긴 내용적으로는 서로 같은 말이기는 하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어릴 적 취미를 책 읽는 것으로 삼았던 세대가 바로 50,60세대다.

뭐든 읽고 싶어도 마땅히 읽을 책이 없었지만 그래도 무엇인가는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던 세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먹을 것도 부족한 판에 읽을거리란 그야말로 배부른 사치로 점철되기도 했다.

한편,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서열이 낮다는 것은 다들 아는 바와 같다. 굳이 창피스러운 수치를 들먹이지 않아도 공감하는 독서율은 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멀어지고 있다. 아니 자세히 살펴보면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부터 그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행히 학교에서 권장하는 필독도서가 있으나 그것만 지나면 그 뒤로는 독서무방비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이 왜 책을 기피하는지 살펴보면 답은 아주 단순하다. 인터넷이 편리하고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지 않아도 대학가고 취직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편승하여 종이책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생겨났었지만, 아직까지는 종이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덮으면 멀어지는 전자매체와 달리 책은 두고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서 다시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의심나는 부분이 있으면 앞으로 혹은 뒤로 넘겨가면서 메모하고 다시 곱씹어보는 장점은 전자매체에서 도저히 따라올 수가 없다.

전자책이나 인터넷 역시 종이 책이 가진 원래의 전달기능을 충분히 하고는 있다. 부분적으로는 알고 싶은 것은 빠르고 다양하게 알아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이런 책들은 저자 즉 선인의 삶을 체득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말하자면 책을 통하여 저자의 경험을 대신 취하여 보다 나은 설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책은 문학을 비롯하여 위인전과 역사물까지 참으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다시 말하면 인류가 생활하는 모든 분야를 정리해 놓았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책은 우리 삶과 떨어질 수 없는 아주 밀접하면서도 실행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선인들이 실패했던 책을 읽으면 그런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으며, 성공한 내용을 읽으면 나도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겠구나 하며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나에게 아무리 친절하고 훌륭한 스승이 있다하더라도 보다 많은 양을 보다 빨리 전달하기 위해서는 책이 더 우선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책은 치유의 힘이 있다.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심리적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처럼, 독서를 통해서도 묵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음악치료나 미술치료 혹은 유행하는 향기치료와도 같은 방법에 속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독서의 필요성을 알지만 실제로 그렇게 많은 독서를 하고 있지 못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시간이 없어서 그렇고, 책을 읽어도 돈이나 쌀이 나오지 않는 다는 것이다. 어릴 때에 보았던 도깨비가 나오는 책에서는 돈이나 쌀이 나오는 경우가 아주 많은데도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인문학의 부재에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가 침몰한 것도 인문학의 부재요, 책을 읽어도 돈이나 쌀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도, 군내 가혹행위와 비인간적 행위가 벌어진 것도 바로 인문학의 부재에서 비롯된 일이다. 책을 읽을 시간에 사람을 만나서 밥 먹고 로비를 하여야 하며, 책을 읽을 시간에 운동을 하여 몸매를 다듬어야 사람취급을 받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책 읽을 시간에 골프를 치면서 사업을 주고받아야 하며, 책 읽을 시간에 권력자와 술을 마셔야 경제적 이득이 생기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인문학의 부재다. 그래서 요즘 다시 인문학이 뜨고 있다.

독서를 함에 있어서는 다른 책을 여러 권 읽어도 좋으며,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어도 좋다. 읽다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책이라고 생각되면 접어두고 다른 책을 읽어도 된다. 문제는 나에게 적합한 책이 무엇인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책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일이 문제라면 문제일 수 있다.

이것은 도서관의 사서에게 혹은 책을 많이 읽는 사람에게 물어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더 이상 몰라서 못 읽겠다는 말도 통하지 않으며, 시간이 없어서 못 읽겠다는 말도 통하지 않는다. 문제는 인문학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길 것인가 하는 것만이 문제로 남는다.

창피한 말이지만 선진국으로 가는 마당에 지도자가 잘못 하여 국격이 무너진 것은 그렇다 쳐도, 국민의 독서열마저 떨어진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나부터 돌아보아야 할 부분이다. 이제는 독서가 취미가 아니라 생활이어야 한다.

지금은 먹고 살만하니 예전의 50,60세대들이 핑계 대던 것도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세계에서 인정하는 것처럼 우리는 공부하는 민족이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독서열풍이 이 가을 한 권의 독서에서부터 되살아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