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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역사, 익산 105년·순천 81년 그러나...순천은 철도마을 조성해 기록물로 남기고 관광지화, 익산은 방치
오명관 기자  |  iscm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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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29  22: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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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13일부터 본 기자는 기회가 될 때마다 전국의 관광지를 찾아 벤치마킹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코너로 마련해 익산 관광의 대안을 찾고자 꾸준하게 연재할 예정입니다. 이에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의견과 지적을 당부합니다.(이 취재기는 본 기자의 주관적 생각입니다)

   
▲ 익산역에서 보관 중이던 공식문서에 이리역사 준공이 1912년 3월 6일이라고 적혀 있다. 이 내용은 2011년 익산시민뉴스가 익산역에 공문을 보냈으며, 익산역 측에서 확인하고 보내준 문서이다.(사진 = 익산시민뉴스DB)
익산의 철도역사가 올해로 105년이다. 1세기가 넘는 긴 세월만큼 익산은 철도역사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특히 이리역 폭발사고의 아픔도 겪었다.

이리역(현 익산역)은 1912년 3월 6일에 대전과 이리간 철도가 연결되고 역사가 준공돼 이날부터 화물여객 영업을 개시했다. 또한 같은 해 이리부터 군산까지 연결되는 군산선도 개통됐다.

그리고 1914년 대전부터 목포까지 이어진 호남선이 개통됐고, 1915년 1월 16일부터 보통역의 기능으로 여객운송을 시작했다. 전라선은 1936년 12월 16일에 이리부터 여수까지 개통됐다. 이 때 순천역도 개통된 것으로 종착지인 여수역 직전에 있다. 현재는 순천역과 여수역(현 명칭은 여수엑스포역) 사이에 여천역이 있다.

   
▲ 익산역 부근에 있는 철도관사의 모습(사진제공 = 익산시도시재생주민협의체 장경호 회장)
그러니깐 이리역사는 105년, 순천역사는 81년이 된 셈이다.

익산역(구 이리역·이하 익산역으로 명칭 통일)은 철도 직원들의 숙소를 마련해 익산역 주변에 많이 지어져 있다. 이를 관사라고 하는데 열차를 타고 이동하는 특성상 직원들이 묵을 숙소가 필요했다. 연대를 보면 일제강점기 시절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본 기자는 올해 2회 째를 맞고 있는 순천 철도마을축제(7월 1일)를 앞두고 지난 27일(화)에 다녀왔다.

   
▲ 순천 철도마을 안에 있는 관사의 모습(사진 = 오명관)
사실 큰 기대를 하고 갔지만 조금은 실망했다. 지도를 펼쳐 관사를 찾아 나섰지만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알고보니 그 관사에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어 들어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표식이 없었다. 아무래도 사생활 침해를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 순천 철도마을은 순천역 앞 조곡동에 위치해 있는데 조곡동 주민자치위원회에서 마을유래 찾기 일환으로 2011년부터 시작해 2013년에는 호남철도협동조합을 결합, 철도관사마을을 철도문화마을로 만들어가는 사업을 진행했다.

당시 순천 철도사무소는 1936년 철도 직원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근대적 도시계획 수법으로 운동장, 병원, 목욕탕, 구락부(클럽), 수영장 등 복지시설과 함께 등급 기준에 따라 4등 관사에서 8등 관사로 분류해 지었다.

   
▲ 승무원 합숙소. 일제시대 기관차 독신자 직원들만 거주했던 곳으로 6.25 전후로 철거됐다가 1977년에 재건축됐다. 이 앞에는 너른 정원이 조성돼 있다.(사진 = 오명관)
8등 관사는 48세대, 7등(갑) 관사는 28세대, 7등(을) 관사는 56세대, 6등 관사는 11세대, 5등 관사는 8세대, 4등 관사는 1세대로 총 77동 152세대로 지었다고 한다. 이 관사들은 철도 직원들만 주거가 허용됐지만 1960년대부터 일반인에게도 허용되면서 당시의 관사들은 사라지고 현재의 건축물로 많이 바뀌어 있다.

비록 우리나라의 철도 역사는 아픔의 역사라고 봐도 무방하다. 일제가 만든 철도시설이라는 점과 쌀을 수탈할 목적으로 개설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일제 시절의 잔재라는 이유로 관심 밖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 순천 철도마을 안에 있는 관사의 모습(사진 = 오명관)
   
▲ 순천 철도마을 안에 있는 관사의 모습(사진 = 오명관)
하지만 순천에 다녀와서 느낀 점은 비록 일제의 잔재라고 해도 이 아픈 역사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라는 점과 지금도 교통의 젖줄 역할을 다하고 있는 철도라는 점에서 관심을 갖고 조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기록물로 남겨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책무가 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익산에도 수많은 철도 관사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일제 시절에 지어진 여관과 병원 등 소중하게 보존해야 할 건축물이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이러한 근대 건축물을 현재 우리가 보존해야 할 이유로 꼭 관광지로 개발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앞으로 100년 혹은 200년 후의 후손들이 역사적 가치를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그대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

익산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미륵사지 석탑이 없었다면, 왕궁리 석탑이 없었다면 마한·백제의 수도라는 것을 어찌 알 수 있었을까? 또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복원하는 데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 당시 철도관사들이 있었던 순천 조곡동의 모습. 하지만 지금은 현대식 건축믈로 바뀌어 관사는 몇 채 남아 있지 않다.(사진 = 오명관)
익산은 백제 시절의 역사만 쳐다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익산의 철도 역사 또한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다. 그러한 가치를 더욱 높이는 방법은 순천처럼 익산 철도관사를 찾아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

익산역은 순천역 보다 20여 년 앞서 있다. 그럼에도 순천은 시가 지원해 철도관사마을을 조성하는 데 혼 힘을 쏟고 있는 듯 보인다. 또한 이를 통해 관광지 순천이라는 이미지도 심고 있다.

특히 익산역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는 철도 사통팔달로 이뤄진 곳이다. 호남선, 전라선, 장항선이 모두 모이는 곳 익산역. 105년 역사 그리고 앞으로 100년 후의 평가는 분명히 달라질 것이고 그 가치 또한 높아 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를 복원하고 보존할 때 가능하다.

   
▲ 철도마을 한 관사 벽면에 있는 사진(사진 = 오명관)
   
▲ 순천 철도문화마을 안내도(사진 = 오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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