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저에게 33살의 건강한 젊음이냐? 장애인이 된 지금의 삶이냐 하고 묻는다면 저는 당당히 후자를 선택할 것입니다. 이제 저도 작은 등불이 되어 어두운 곳을 밝게 비추고 싶습니다.(기사 하단에 수기 내용 있음)

올해 4회를 맞는 익산시보건소 맞춤형방문건강관리사업 미담수기 최우수작에 임영숙(53ㆍ영등1동)씨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 밝은 햇빛 가운데로’가 선정됐다.

▲ 최우수상을 받은 임영숙 씨.

지난 30일 보건소에서는 미담수기 시상식이 열린 가운데 이번 미담수기 공모작품은 총 40여 편 중 최종 6편을 선정 한 것.

최우수상 외에도 우수상에 백영애(50세ㆍ동산동)씨와 백순례(84세ㆍ부송동)씨, 장려상에 최상례(64세ㆍ모현동)씨, 박종채(75세ㆍ남중동)씨, 강완모(46세ㆍ송학동)씨가 각각 선정됐다.

최우수상을 수상한 임영숙씨는 21년 전 사고로 하반신마비 진단을 받은 후, 심한 통증과 욕창으로 하루하루를 진통제로 견디다 못해 우울증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 같은 세월을 지나면서도, 강인한 투병의지로 두 딸을 반듯한 성인으로 키우는 등 하루하루 자신의 고통을 퍼 올려 희망이라는 나무를 키움으로써 삶의 깊은 성찰을 주었다는 데 큰 감동을 줬다.

수상작 이외에도 만성질환과 결핍 속에서 방문간호사와 희망과 용기를 키워왔던 잔잔한 울림의 글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어져 이날 수상자들에게 전달됐다.

보건소 관계자는 “맞춤형방문건강관리사업은 급증하는 노인인구와 빈부격차 등으로 발생되는 취약계층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건강매니저와 행복배달부로서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수상자 명단이다.

최우수상
임영숙(53), 익산시 영등동 '어두운 터널을 지나 밝은 햇빛 가운데로'

우수상
백영애(50), 익산시 동산동 '이 따뜻하고 살만한 세상에..'

우수상
백순례(84), 익산시 부송동 '어려울 때 도와주는 사람'

장려상
최상례(64), 익산시 모현동 '합병증을 이기게 하는 힘'

장려상
박종채(75), 익산시 남중동 '보건소장님께'

장려상
강완모(46), 익산시 송학동 '희망을 꿈꾸며'

수기공모 최우수작, '어두운 터널을 지나 밝은 햇빛 가운데로'

저는 두 종류의 삶을 사는 임영숙입니다. 일찍이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가 직장생활 하던 중에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여 딸 둘을 낳고 제책사라는 자영업을 하며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 한번 한 적도 없고 어려운 이웃을 한번 돌아보지 못한 그저 내 가정 내 자녀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1989년 4월 30일 평소에 야구를 좋아했던 우리 가족은 인천에서 열리는 해태와 태평양과의 야구를 보기위해 인천 야구장을 찾았습니다. 경기 시간은 다 돼가고 있었지만 야구장 문을 열지 않아 모두 아우성이었습니다.

드디어 문은 열렸고 서로 앞서가려고 질서를 지키지 않아 압사 사고가 일어났다. 사람들 사이에 깔린 나는 요추 1·2번이 골절되면서 하반신 마비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럴 리가 없어 조금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일어나 걸으리라. 나 스스로 위로하고 격려해 보지만 내 다리는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고 소변도 내 힘으로 되지 않아 폴리를 끼웠고 대변도 볼 수가 없어 친정어머니께서 늘 장갑 낀 손으로 꺼내 주셨습니다. 내 힘으로 앉아 있을 수도 없었고 먹는 것도 누워서 해결해야 했습니다.

아무리 울며 의사를 붙잡고 사정해 봐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8살의 큰 아이와 아직 기저귀를 떼지 못한 작은 아이의 엄마인 나는 하염없이 눈물 흘리며 좌절할 뿐이었습니다.

이제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떻게든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병문안 오는 사람을 붙잡고 밤에 잠을 못 자니 수면제 한 알만 사다 달라고 애원했고, 아무 낙이 없고 웃음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런 딸을 위해 늘 닦아주고 씻어주고 먹여주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자식한테 무슨 죄나 지은 사람처럼 제 눈치를 보고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어머니께 나는 늘 소리 지르고 가버리라고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며 원망했습니다.

남편을 떠나 두 딸을 데리고 고향인 익산으로 내려와 오직 아이들 엄마로 살면서 딸이 시장에 가서 콩나물 등 반찬거리 몇 가지 사오면 여자가 아닌 엄마로 강하게 그리고 자식들 보는데 눈물 흘리지 않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심한 통증으로 고통스러웠고, 여기저기 터지는 욕창으로 살 썩는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이렇게 나는 5년을 세상과 담을 쌓았습니다. 나을 수 있다고 하면 무당들을 찾아다니며 굿이라는 것도 해봤고, 100일 산기도도 해보았지만 모두가 헛수고였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마지막으로 예수를 믿어보라고 권하시면서 내가 다닐만한 교회를 추천해 주셨습니다. 큰 딸이 휠체어를 밀고 거리를 나서는데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들이 “어쩌다 쯧쯧”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습니다.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누군 처음부터 이렇게 됐나 하면서 스스로 나를 위로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신앙생활이 나를 세상 밖으로 이끌어 주었고 사람을 만나 얘기하며 차츰 웃음이 찾아왔습니다.

이렇게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것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이 열린 것입니다. 제 마음에 또아리를 틀었던 미움이 사라지고 어느덧 감사로 변해 있었습니다. 마음이 열리니 제 자신의 삶이 훨씬 윤택해졌습니다. 그렇다고 통증이 사라진 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진통제를 하루 10알 이상 먹어야 하루가 지나가고 여기저기 욕창도 여전히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일로 해서 전혀 근심하거나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보건소 방문 선생님을 만난 건 8년 전입니다. 선생님이 우리집을 방문하겠다고 전화가 왔는데 그땐 별로 반가워하지 않고 오늘은 무엇 때문에 안 되고 내일은 또 일이 있고 하면서 방문을 꺼려했습니다. 그

렇지만 선생님은 쌀도 들고 오시고 생필품도 가져다 주시고 욕창 치료며 혈압 등을 체크해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몇 분의 선생님으로 바뀌었지만 이제는 내가 먼저 전화드려서 “배선생님 언제쯤 오시나요”하고 기다리곤 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유익을 주려고 하는 그 마음이 너무나 아름다워 늘 사랑의 빚진자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배 선생님을 통해 보건소에서 하는 프로그램으로 자조모임에 참석하며 리본아트 풍선아트, 골판지 공예등을 했습니다. 한번도 해보지 못한거라 반신반의 하면서 시작했는데, 풍선을 불어 여러 가지의 동물과 꽃모양 등을 또 여러 끈이나 헝겊들을 이용해 머리끈이며 보석함 등을 만들며 너무 재미있어하는 내 모습이 나를 새롭게 했습니다. 정말 나한테 이런 재주가 있었나하고 새삼 놀랐습니다.

지금도 저같이 마음 문을 닫고 세상과 담 쌓은 장애우가 있다면 마음으로 열고 새 삶을 접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새 삶을 이끌어 주려고 노력하는 분들이 많이 있음을 알게 될 겁니다. 내 자신을 찾도록 또한 우리의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분들이 많이 있음을 알게 될 겁니다.

방문간호사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들을 위해 일하시는 분들입니다.

몸은 비록 장애를 입었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도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전라북도 그리고 익산시보건소. 언제든지 우리가 마음을 열면 도움을 주는 보건소가 있어 행복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내 몸이 좋아져서 걸을 수 있어서가 아닙니다. 여전히 휠체어에 의존해 살고 있지만, 살아있음 그 자체가 감사합니다. 어두운 터널을 벗어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따뜻한 이웃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 때문에 감사합니다. 누군가 저에게 33살의 건강한 젊음이냐? 장애인이 된 지금의 삶이냐 하고 묻는다면 저는 당당히 후자를 선택할 것입니다. 이제 저도 작은 등불이 되어 어두운 곳을 밝게 비추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