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삼일회계법인(교과부 위탁) 컨설팅의 문제점

▲ 원광대학교 교정

교육과학기술부의 위틱을 받은 삼일회계법인은 지난 3개월 간 원광대학교에 대한 컨설팅을 실시하였다. 이 컨설팅은 원광대학이 지난해 9월 5일 교과부로부터 '정부재정지원 및 학자금 대출 제한대학'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교과부로부터 강제된 것이었으며, 그 목적은 컨설팅을 통해 우리 대학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데 있었다.

그러나 삼일회계법인의 컨설팅은 다음과 같은 중대한 오류를 범함으로써 그 원래 의도했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오히려 우리 대학을 혼돈의 수렁에 빠트리는 단초를 제공했다.

1) 경영컨설팅의 문제점

이번 컨설팅은 처음부터 경영컨설팅을 표방하고 시작되었다. 하지만 실용학문이 아닌 인문학, 예술 등의 기초학문을 경영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매우 관료적인 발상으로서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 일자리 창출을 하지 못하는 현 정부의 무능을 대학에 떠넘기려는 의도로까지 여겨진다.
문ㆍ사ㆍ철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인문학이나 음악, 무용 등 예술분야는 전공지식이 재화로 창출되는데 오랜 기간이 필요하며, 취업의 형태도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실용학문과 구별되는 평가방식이 적용되었어야 했으나 이 점이 완전히 무시된 경영컨설팅은 그 첫 단추부터 잘못 끼어진 패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 77개 학과의 등수매기기로 끝난 용두사미 컨설팅

삼일회계법인은 작년 12월 컨설팅을 시작하면서 우리 대학의 건학이념과 특성화에 맞는 컨설팅을 실시할 것이라 천명하였으며, 그 방법 역시 정량평가와 정성평가 두 가지를 실시할 것이라 공언하였다.

하지만 3개월이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이루어진 컨설팅 작업은 오직 정량평가 뿐이었다. 그나마도 계열이나 학과의 특성은 고려되지 않은 채 교육과 재정 두 영역에 대해 획일적으로 평가가 이루어졌으며, 그 산술적 결과에 따라 우리 대학의 77개 학과(전공)의 등수를 매긴 후 이를 다시 6개 그룹 (S, A, B, C, D, E)으로 분류하고, 최하위 E등급을 받은 11개 학과의 폐과를 필수 이행사항으로 통보하는 것으로 컨설팅을 마감하였다.

교과부는 이번 컨설팅을 통해 우리 스스로는 냉철히 인식하기 어려웠던 우리 대학의 장점과 취약점을 진단하고, 그 결과를 대학의 건학이념, 특성화 방안과 결부해 미래지향적인 생산적 구조조정안을 제시했어야 했다.

하지만 대학 본부와의 협의과정을 거치면서 객관성을 상실한채 그 타협의 산물로서 우리에게 제시된 이행방안은 등수매기기와 꼬리자르기 뿐이었기에 우리는 이러한 컨설팅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3) 학과(전공)의 특성이 무시된 획일적이고 편의적 컨설팅

단 하나 이루어졌던 정량평가 조차도 결코 구성원들이 동의할 수 없는 획일적이고 편의적인 방식에 의해 이루어졌다. 삼일회계법인은 모든 기초 데이터를 학교측으로부터 받았을 뿐이며, 이 자료의 정당성과 그 사용에 대한 해당 학과(전공)의 동의를 얻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많은 부정확한 기초자료들이 사용되었으며, 그 시정을 요구하는 학과(전공)의 요구를 타당하지 않은 자체 논리를 내세우며 받아들이지 않는 획일적이고, 편의적인 컨설팅 태도를 견지하였다.

예를 들어 이번 폐과대상이 된 학과들은 대부분 오랜 전통을 가진 학과들이며, 이 학과들에 재직하는 교수들은 근무기간이 길어 높은 봉급을 받는 교수들이 대부분이다. 반면에 신설학과들에는 높은 호봉의 교수들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차이점이 무시된 채, 어떠한 평가보정장치도 없이 이루어진 이번 평가는 그 출발점에서부터 불공정시비를 잉태한 잘못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평가팀의 논리대로라면 이 대학에 오래 근무해, 이 대학의 발전을 위해 기여한 것 자체가 잘못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II. 컨설팅결과의 이행과 관련한 원광대학교 집행부의 무능과 독선

삼일회계법인은 3월 7일 오후 2시에 교무위원회에서 컨설팅결과를 통보했다. 총장 및 대학본부는 오후 3시 폐과대상 11개학과 (인문대학: 철학과, 독일문화언어전공, 프랑스문화언어전공, 국악전공, 무용전공/ 미술대학: 한국화전공, 서양화전공, 환경조각전공, 도예전공/ 교학대학: 한국문화학과/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 전공)의 학과장들을 소집해 폐과결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했으며, 그 직후 기자회견을 자청해 폐과결정을 발표했다.

이 모든 과정은 매우 신속했으며, 마지 군사작전을 보는듯했다. 하지만 총장 및 대학본부의 이번 처사는 교육기관에서는 있을 수 없는 비교육적이고 비민주적인 행태였다.

1) 총장은 아직 교과부의 최종 통보가 오기도 전에 (3월 21일까지도 교과부의 통보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폐과사실을 기정사실화했다. 이는 우리 대학의 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을 무시한 독단이며, 비민주적인 행태였다.

2) 그러나 이것은 교육기관에서 가장 중시되어야 할 학생과 그 학부모들을 철저히 무시한 비교육적인 행태로서, 관료출신으로 교육현장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현 총장과 그가 이끄는 현 집행부의 무능과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3) 총장과 집행부의 비교육적인 결정으로 인해 해당 11개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들과 그 학부모는 대학이나 교수로부터 어떠한 언질도 받지 못한 채 신문과 TV 등 언론매체를 통해 이 중대한 사실을 처음 접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그 결과 교육현장은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총장과 집행부의 미숙하고 독단적인 행정이 학기 초 수업과 연구에 매진해야 할 학생과 교수를 강의실 밖으로 내몬 것이다.

4) 총장과 집행부의 폐과결정은 대학의사결정 과정도 준수하지 않은 독단으로 밖에 볼 수 없다. 학과 폐지와 같은 중대사항은 최종 결정이 법인 이사회에서 의결되어야 하며, 그 전에 교무위원회, 대학평의원회 등의 심의ㆍ의결을 거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총장과 집행부는 이러한 규정조차 지키지 않은채 폐과의사를 마치 최종결정인양 언론에 발표하는 명백한 행정적 잘못을 저질렀다.

5) 총장과 집행부는 삼일회계법인의 컨설팅 결과를 교수, 학생 등 대학 구성원과 충분한 토의를 거쳐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구조조정안을 만들어냄으로써 이번 컨설팅을 원광대학의 위기극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었으나 독단적이고 미숙한 행정처리로 인해 이러한 기회마저 무산시켰다.

6) 삼일회계법인 컨설팅이 최종적으로 요구한 것은 비대해진 대학경영을 적정한 수준으로 감량경영하라는 요구였으며, 그것은 입학정원 10% 정도에 해당하는 입학정원의 감축이었지 결코 e등급 판정을 받은 특정 11개 학과의 폐과가 아니었다. 이것은 컨설팅팀이 확인한 내용이다.

7) 하지만 컨설팅 결과에 개입하지 말았어야 했을 대학본부가 컨설팅팀과 협의해 최종 이행과제의 설정에 부당하게 개입했으며, 이 과정에서 이행과제를 통폐합등을 통한 구조조정이 아닌 폐과로 결정한 것이다.

대학본부가 이행과제 설정에 개입했다는 것은 교학부총장과 인문대학간의 간담회에서 교학부총장이 확인한 사항이다.

8) 우리 대학은 작년 9월 5일 학자금대출제한대학으로 선정된 직후 입학 정원의 10%에 해당하는 400여명을 대학정상화의 선제조치로 이행하여, 이번 구조조정에서 입학정원 감축은 애초부터 제외되어 있었다.

당장의 정원감축이 없다는 점은 우리 대학이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자체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9) 이처럼 우리 대학은 대학본부가 개입하지 않은 객관적인 컨설팅 결과에 토대해 위기극복을 위한 구조조정 방안을 구성원 모두와 함께 허심탄회하게 토론해 다수가 공감하는 합리적인 구조조정안을 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본부가 컨설팅결과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학생과 교수에게 알리지도 않은채 그 결과를 하루만에 기정사실화하는 잘못을 저지르면서 위기극복의 계기가 될 수 있었던 컨설팅은 또 다른 분열과 혼돈을 야기하는 단초가 되어버린 어리석고 불행한 결과를 초래했다.

10) 이번에 폐과대상으로 지목된 11개 학과의 교수와 학생들이 가장 아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점이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컨설팅결과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었으며, 구성원 다수의 동의 아래 학과 통폐합, 신설학과의 개설 등을 통해 미래지향적인 변화를 모색할 수 있었다.

학문의 동향도 변모하고, 학문을 둘러싼 외적 환경도 변화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변화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학과나 구성원은 아무도 없다.

2) 종립대학으로서 건학이념을 포기한 폐과결정

이번에 폐과대상으로 지목된 11개 학과는 모두 인문ㆍ사회계열학과와 예술계열 학과들로서 실용학문이 아닌 기초학문을 교육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인문학과 같은 기초학문은 실용학문의 토대를 형성하는 분야로서, 모든 실용적이고 전문적인 지식형성의 전제조건인 성숙하고 건전한 인간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더욱이 원광대학은 원불교단이 설립한 종립대학으로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건학이념에 의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의 전당이다.

급속한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한 인간정신의 황폐화를 저지하고, 올바른 인성함양의 필요성은 디지털매체와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21세기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건학이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광대학교에서 인문학, 예술 등 기초학문은 더욱 활성화시켜 우리 대학을 대표할 학문으로 육성해야할 대상이지 폐과 운운할 수 있는 학과들이 아니다.

우리 교수들은 다시 건학이념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며, 그에 걸맞는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3) 책임소재 규명 요구

이번에 폐과대상으로 지목된 11개 학과는 공통적으로 왜 이 학과들이 속죄양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동시에 외부로부터 강제 구조조정을 당하게 만든 책임자들이 근본적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삼일회계법인 컨설팅은 우리 대학이 원해서 시작한 컨설팅이 아니다. 교과부로부터 작년 2월 송부된 대학평가가 예정 공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6개월의 준비기간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총장, 교학부총장 등 현 집행부의 명백한 잘못과 무능으로 인해 야기된 인재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총장과 교학부총장 등은 아직도 사과 한마디 없이 책임회피에만 급급하고 있으며, 우리 대학 위기의 원인을 자신들이 아닌 기초학문 11개 학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구성원들은 총장 등의 책임인정과 사과, 더 나아가 사퇴까지를 요구하게 된 것이다.

원광대학교 제15대 교수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