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야의 의미

▲ 익산시민뉴스 논설위원(수필가, 칼럼니스트)

음력으로 12월 즉 섣달을 납월(臘月)이라 하고, 섣달그믐 저녁을 제석(除夕)이라 부르며 세제(歲除), 세진(歲盡), 제야(際夜)라고도 한다.

이는 지나가는 해의 마지막 밤을 제거한다는 의미로, 한 해를 종결(終結)하고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끔 구랍(舊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지난 12월 즉 지난해의 12월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구랍은 음력의 구랍인지 양력의 구랍인지 잘 따져보아야 한다.

이날을 내일 다가올 설날에 비하여 작은설이라고 하였으며, 성묘와 일가친척에 대한 인사를 올렸는데 이것이 바로 묵은세배다. 지난해의 보살핌에 감사하는 마음과 혹시 잘못된 일이 있었거든 모두 잊고 용서해달라는 의미, 어르신께 무슨 일이 있었으면 그것을 다 털고 새롭게 거듭나시라는 인사가 담겨있는 것이다.

제야의 풍속

섣달그믐은 사당(祀堂)과 가까운 친척을 찾아 묵은세배 즉 구세배(舊歲拜)를 하였으며, 동지로부터 세 번째로 맞는 미일(未日)을 골라 납향(臘享, 臘祭)이라는 감사와 축원을 드렸다. 납일은 시대에 따라 세 번째 술(戌)일로 정하기도 하였으며 백신(百神)에게 제사하였다.

마지막 보내는 날 밤은 가는 해를 지킨다는 수세(守歲) 혹은 해를 보낸다는 의미의 별세(別歲)라 하여 다락, 마루, 방, 부엌, 곳간 등 구석구석에 불을 밝히고 모든 부정(不淨)을 떨어냈다. 이때 제야(除夜)의 종을 치는데, 절에서 108번을 치던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조선시대의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5경(五更) 즉 새벽 4시 파루(罷漏)라는 33번의 종소리 이어졌다.

제야에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는 말은 정초풍습에 따라 신새벽에 물을 떠오기 위하여 늦잠을 잘 수가 없었던 것과, 설음식을 마련하느라 잠잘 여유조차 없었던 것을 빗댄 말이다.

조선시대 궁에서의 풍속(宮闕風俗)으로는 제석(除夕)에 염병을 물리친다는 ‘벽온단(辟瘟丹)’ 향불을 피우고 비상약인 납약(臘藥, 臘劑)를 하사하였다. 이때 연종포(年終砲) 혹은 연종방포(年終放砲)를 쏘면서 여러 가지 행사를 하니 연종제(年終祭)라 불렸다.

민간풍속(民間風俗)으로는 널뛰기 즉 여도판희(女跳板戱)를 즐겼으며, 납일에 잡은 참새는 병약(病弱)한 사람들에게 좋다고 하였다. 납일에 내린 눈을 녹여 만든 납설수(臘雪水)는 상비약 대용이며, 지역에 따라 엿을 고기도 하였다.

납일에 돼지고기(豬肉)을 즐겼으며, 과실나무가 많은 열매를 맺기 원하는 기원행위도 하였다. 아주까리를 태우면 빈대가 없어진다고 믿었으며, 자면서 이를 갈면 자는 아이의 이름을 세 번 부르고 나뭇가지에 돌을 끼워 넣기도 하였다. 또 섣달그믐에 돌아온다는 조왕신(寵王神) 맞이하는 촛불을 밝히고, 한 해 동안 빠졌던 머리카락을 모아 태우는 액막이도 있었다.

음력 12월 말일에 먹을 음식은 설날에 사용할 제수음식과 똑 같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제상에 올릴 음식은 따로 담아두었으며, 지나가는 해의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고 하여 쌀밥에 쇠고기와 육회, 튀각, 각종 나물 등을 넣어 비벼먹는 골동반(骨董飯)이 생겨났다. 이 골동반의 재료는 현재의 비빔밥과 같은 것으로 새로운 음식으로 발전하였다.

이런 마무리 풍습은 섣달그믐까지 이어진 바느질이나 빨래하기, 나무하기, 새끼꼬기, 책읽기 등 모든 일에 해를 넘기지 않는 풍속으로 이어졌다.

이밖에도 인절미, 족편, 돼지고기찜, 수정과, 식혜, 만두, 떡국, 완자탕, 전골, 설렁탕, 주악 등이 섣달의 먹을거리에 해당된다. 이중에서 설렁탕은 예전에 선농단(先農壇)에서 끓여먹었던 선농탕(先農湯)이 설농탕(雪膿湯)을 거쳐 설롱탕으로, 다시 설렁탕으로 변했다고 아는 바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