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일의 의미

▲ 익산시민뉴스 논설위원(수필가, 칼럼니스트)

조상들은 음력 2월 1일을 영등날로 부르는데, 이날은 비바람을 일으키는 영등신이 땅으로 내려오는 날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2월은 영등달이 되며, 영등신을 모시는 놀이를 영등굿놀이라 한다.

영등신(靈登神)이 두 딸을 대동하여 내려오는 때에는 일기가 온화하며 산들바람이 불어 풍년이 들지만, 며느리까지 대동하면 거친 바람으로 풍파가 일고 흉년이 든다고 믿었다. 영등신은 3일 혹은 2월 15일에 올라가지만, 늦으면 2월 20일까지 있다가 올라간다고 한다.

영등일의 유래

영등신은 농신(農神)이면서 풍신(風神)이다. 그러므로 농어촌에서는 풍작과 풍어를 기원하여 풍신제(風神祭)를 지냈는데, 이를 ‘바람 올린다’고 하였다. 영등일을 2월의 초하루로 잡은 것은 서서히 농사일을 준비하고자 하는 일깨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중국의 명절이었던 중화절을 본떠 조선 정조 20년 1796년 우리도 중화절(中和節)로 삼았다. 그러나 중화척을 비롯한 다른 행사들이 민가에 퍼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려, 대다수 국민들은 상당기간 그냥 고유의 머슴날로만 여겼었다.

영등일의 기록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 집집마다 신을 제사 지내는데 그 신을 이름하여 영등신(靈登神)이라 한다... 이달 초하루부터 사람을 꺼리어 만나지 않는데 15일 혹은 20일까지 간다.’고 하였다. 그런가 하면 ‘제주의 풍속에 2월 초하룻날...신을 맞이하여 제사를 지낸다. ...이것을 영등이라고 한다.’고 기록하였다.

또 조선후기 이옥(李鈺)이 쓴 ‘봉성문여(鳳城文餘)’에도 유사한 기록이 있다. 이런 내용들을 살펴보면 주로 영남지방과 제주지방 사람들이 처음에 주술적 신앙으로 지켰지만 점차 어촌에서 일기에 따른 어로를 고려할 정도로 현실적인 풍습으로 전해졌다.

영등풍속

영등일에는 풍신제(風神祭)를 지내는 것은 물론 이와 상반되게 금속(禁俗)도 많았다. 기본적으로는 제사를 통해 영등신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지만, 반대로 화려한 분홍색 계통의 옷을 입거나 아침부터 나돌아 다녀 신의 비위를 거스르는 일이 없도록 하였던 것이다.

구체적인 예로는 바람과 비를 동반하여 모든 농사와 어업을 관장하는 영등신보다 먼저 논에 나가 일을 한다든지 출어를 하는 것도 해서는 안 되는 금기사항이었다.

이밖에도 중국에서 유래되기는 하였지만 농사와 일상에 필요한 중화척(中和尺)을 내리던 중화절(中和節)행사, 콩을 볶으면서 쥐를 잡자 새알 볶자 하면서 쥐와 새의 피해를 줄이려는 콩볶기, 강한 향이 나는 물질을 넣은 향주머니로 노래기퇴치하기, 앞으로 많은 일을 해야 하는 머슴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머슴날(奴婢日), 풍년을 가져오는 묘성(昴星) 즉 좀생이별보기, 연(鳶)놀이 등이 있다.

영등일 음식

사람들은 송편(松餠)이 추석의 대표음식인 줄 알고 있지만, 사실은 2월 초하루인 영등일의 먹을거리였음도 알아야 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정월 대보름에 세웠던 볏가릿대를 내리고, 그 속에 넣었던 곡식으로 송편이나 떡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이 떡은 앞으로 농사일을 하게 될 머슴들이 힘을 내라는 의미로 주먹만하게 만들었는데, 콩을 불려서 속을 넣고 솔잎을 깐 시루에 담아 쪄냈다. 푹 익은 송편은 물기를 없애고 참기름을 발라서 머슴의 나이 수대로 먹게 하였다. 따라서 2월의 송편은 머슴송편 혹은 노비송편이 되기도 한다.

소(巢)는 팥, 밤, 검은콩, 푸른 콩 등은 물론이며 꿀이나 대추와 같이 단 음식을 넣어서 만들기도 하였으며 미나리를 넣기도 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먹을 것이 풍부하지 못했던 시절에 볶은 콩을 먹는 맛도 빼놓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