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락 우리문화’라는 프로그램 녹화를 위해 광주MBC를 다년 온 적이 있었다. 내가 소속된 단체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호인 ‘익산목발노래’이다.

▲ 익산시민뉴스 논설위원(수필가, 칼럼니스트)

예전에 익산목발노래가 무형문화재 지정 후 지정 해제되는 순간도 있었지만, 행정기관이나 유관단체의 도움 없이 순수한 회원들의 노력으로 문화재 재지정까지의 과정을 재조명한 시간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 전라북도의 문화재를 타 지역의 방송사에서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증명되고 남는다.

우리 지역의 JTV 전주방송에서도 작년 12월에 ‘전북인 이야기’ 코너로 방송한 적이 있었지만, 실외의 일상적인 다큐형식과 실내의 의도된 녹화에는 약간의 차이가 느껴졌다. 굳이 말하자면 선택과 집중의 간격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전라북도에는 여러 가지의 문화재가 있다. 무형문화재와 유형문화재로 구분하는 것은 물론이고, 문화재의 희귀성이나 포괄성 등으로 나누는 국보와 보물 등 여러 형태로 나누기도 한다. 이런 여러 종류의 문화재가 타 지역에 비해 그 수 역시 적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오늘 말하고자 하는 문제는 관심과 보존이라는 측면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어떤 지역의 어떤 문화재이든지 일단 문화재로 지정된 상태라면 이미 그 존재가치가 귀중하다는 것을 인정한 증거이며, 후손들에게 물려주어도 손색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예전에도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대표축제로 까지 꼽힌 김제의 지평선축제가, 이제 후세들에게는 하나의 무형문화로 재조명될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얼마 전에 대통령선거가 있었다. 그때 도입된 것이 전자시대의 대표적 산물인 ‘전자개표기’이다. 많은 사람들의 수고를 덜면서도 정확하고 매우 빠르게 집계하여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킨다는 기계이다. 그런데 이 기계를 놓고 개표기냐고 물어보았을 때 선거관계자는 대답을 회피하다가 집요하게 물으니 개표기는 아니라고 하였다. 그럼 단순하게 수를 집계하는 기계냐고 물으니 이 기계는 개수기라고 대답하였다.

개표기와 개수기!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언뜻 들으면 같은 말인 것처럼 들린다. 또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같이 해석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확히 따져보면 개표기(開票機)는 투표한 표를 정확히 읽어서 누구에게 투표하였는지 판독한 후 그 수를 집계하는 기계이다. 반면에 개수기(開數機) 혹은 계수기(計數機)는 이미 분류된 상황에서 단순히 그 수가 얼마인지를 헤아려 집계하는 기계이다.

그러니 개수기로 계수를 하기 전에 사람의 눈으로 보아 같은 사람에게 투표된 표끼리 모아 분류하면, 그 다음에 모아진 표를 세는 단순 작업기계인 셈이다. 반면에 처음부터 누구에게 투표하였는지를 기계가 판독하여 분류하는 것을 포함해 사람대신 숫자를 계산하는 기계가 개표기라면 이해가 될 것이다.

여기에서 사람이 일으키는 자연적 실수 혹은 있을지도 모르는 고의적 실수를 줄이는 방법을 적용하지 않은 것에 대한 지적이 많이 일었다. 각 지역의 금융기관 창구마다 요즘은 각 기업마다 가지고 있는 지폐 계수기도 위폐와 진폐를 가려내는 능력을 가지면서 그 숫자를 세는 역할까지 잘 해내고 있다.

하물며 한 나라의 대통령선거에서, 모든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온갖 방송매체가 생중계하는 마당에 그냥 단순한 위폐조차 가려내지 못하는 말뿐인 계수기를 사용하였다는 것은 IT강국의 수치요 국민 길들이기의 표본이다. 그런데 오늘은 개표가 아니라 우리 문화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우리가 문화를 이야기할 때는 문화재로 등록된 문화는 물론이며, 등록되지 않은 부분까지 포함하여 문화로 취급하는 것이 정설이다. 예를 들면 전주단오놀이는 현재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문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행사를 기다리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게다가 행정에서도 이 날의 행사를 연례적으로 개최하며, 점차 확대시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이 문화에 대한 현 주소다.

그러나 익산목발노래 같은 경우는 전혀 격에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지정 해제가 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이후에 행정이나 유관단체에서 그에 대한 관심이 하나도 없었다.

누가 묻기를 어떤 문화재가 있느냐고 하면 예전에는 이런저런 문화재가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이제는 해제되었나는 말은 곧잘 하였다. 그러면서 이를 복원하고 활성화시킬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스스로 자생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응원해주는 일조차 없었다. 이를 복원하고 문화재로 재지정되기까지의 비용이나 장소, 방법 등 모든 문제를 개인의 노력과 자신의 재산으로 충당했다는 것은 행정에서 반성해야 할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쨌든 익산목발노래는 문화재로 재지정을 받은 상태다. 이제 문화재 수를 말할 때면 하나의 자격을 갖추고 있는 숫자를 세는 상황이다. 위에서 말한 대로 본다면 개수기 혹은 계수기인 셈이다.

그러면 단순한 개수기가 아니라, 복잡하지만 편리하게 처리할 수 있는 개표기는 만들 수 없는 것일까. 아니다. 현재의 우리 실력으로 본다면 그런 기계정도는 만들고도 남는 수준이다. 아니, 그런 기계를 만들어 수출하고도 남을 정도다.

과연 우리시대에 필요한 것은 개수기일까 개표기일까. 물론 경우에 따라 둘 다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단순한 개수기보다 더 편리한 문명의 이기 즉 개표기를 원하는 것이 상식이다. 행정이나 유관단체가 문화재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져주고, 그에 맞는 지원이 필요함을 말하고 싶다.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었지만 아직까지 변변한 연습장조차 없어 그냥 돌아간다면 격에 맞지 않는 일이다. 더구나 개인이 사재를 털어 빌린 창고마저 비가 새는데, 이를 고칠 형편조차 안 된다면 문화가 제대로 보존되고 물려줄 수 있을지 하는 걱정마저 든다.

오늘 우리는 문화재가 몇 개인지 수를 세는 것보다는, 어떤 문화재가 어떤 상황에서 전수되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