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는 24절기의 열다섯 번째로 처서와 추분 사이에 들며, 음력으로는 8월에 들고 양력으로는 9월 9일경이다. 이때는 태양의 황경이 165˚에 올 때이며, 밤에 기온이 내려가고 대기(大氣) 중의 수증기가 엉켜서 이슬이 맺히는 계절이다. 따라서 파란 풀잎에 하얀 이슬 즉 투명한 이슬이 맺혔다고 하여 백로라고 부른다.

백로의 환경

▲ 익산시민뉴스 논설위원(수필가, 칼럼니스트)

농도(農道)인 전라북도 전주에서 백로(白露)로 기준한 9월 8일의 기후를 보면, 1971년부터 2000년까지의 평균기온의 평균은 22.8℃였으며, 최고기온의 평균은 27.7℃로 나타났고, 최저기온의 평균도 18.8℃로 처서에 비해 약 2℃나 낮게 나타났다. 강수량은 4.7mm로 처서의 절반에 해당하는 것에 비해 평균습도가 77.6%로 높은 편이었다. 바람의 평균속도 1.1m/s로 잠잠한 편이다.

옛 사람들은 백로 입기일(入氣日)로부터 추분전까지를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 처음인 초후(初候)에는 기러기가 날아오고, 중후(中候)에는 제비가 강남으로 돌아가며, 말후(末候)에는 뭇 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고 하였다.

백로의 상황

바야흐로 더위가 물러가고 가을의 기운이 완전하게 나타나는 계절이다. 백로의 후반에는 하늘이 높고 쾌청한 날씨가 계속된다. 간혹 남쪽에서 태풍이 불어와 곡식을 넘어뜨리거나 해일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대체로 평온한 시기다.

만곡(萬穀)이 익어가니 백로(白露)에 먹이를 찾는 새들이 몰려들고, 들녘에서는 이를 쫓으려는 허수아비의 수고가 한창인 시기다. 요즘에는 허수아비가 움직이는지 움직이지 않는지를 따져 골라 앉는 새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것은 모두 내 편하자고 허수아비를 벌세우는 지혜로운 인간들이 가르쳐준 학습효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백로 무렵에는 장마도 물러갔고, 아침저녁의 기온차가 심하며 맑은 날씨가 계속된다. 하지만 간혹 남쪽에서 불어오는 태풍과 해일로 인하여 곡식들이 피해를 입기도 한다.

백로 다음에 오는 추분은 중추(中秋)와 함께 차가운 이슬이 맺히는 시기이다. 볏논의 나락은 비록 늦게 심었어도 백로가 되기 전에 패어야만 제대로 여문다고 하였다. 백로가 지난 다음에 패는 나락은 미처 다 익기도 전에 서리가 내리고 찬바람이 불어와서, 제대로 결실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백로 풍속

백로가 음력 7월 중에 들면 오이가 잘 된다고 믿거나, 날씨가 잔잔하지 않으면 오이가 다 썩는다고 믿었다. 일부에서는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十里) 천석(千石)을 늘인다.’고 하여 백로에 비가 오는 것을 풍년의 징조(徵兆)로 여겼다.

이때는 잠시 일손을 쉬는 시기로, 부인들이 친정에 다녀오는 등 친지를 방문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백로에 내린 콩잎의 이슬을 손으로 훑어 먹으면 속병이 낫는다고도 한다.

백로의 먹을거리

백로에 들면 월동용 식재료들이 아직 생산되지 않는 시기로, 참외는 중복(中伏)까지 맛있고 수박은 말복(末伏)까지 맛있다는 말로 위안을 삼았다. 그러나 굳이 따진다면 처서(處署)에는 복숭아가 제격이며 백로(白露)에는 포도가 최고라는 말도 된다.

복숭아는 처서에서 백로에 걸쳐 먹어도 훌륭하다. 한여름 밤에 원두막에서 먹는 복숭아는 벌레와 함께 먹기 일쑤다. 그래서 복숭아는 밤에 먹어야 더 맛있다는 말도 생겨났다.

포도는 옛 편지에서 ‘기체후일향만강(氣體候一向萬康)하시옵고’가 ‘포도순절(葡萄旬節)에 기체만강하시옵고’로 변하게 하는 과일이다. 이런 포도는 주렁주렁 달린 모습이 다산(多産)을 의미한다. 그래서 조선시대 백자(白磁)의 포도 문양(紋樣) 역시 다산의 의미이며, 내방(內房)에 두었던 것은 주술적(呪術的) 요구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