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편찬위원회는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 방대한 한국사관련 사료를 수집·편찬하여 학계에 기여해온 ‘우리나라 유일의 국립 사료편찬기관’이자 ‘우리나라 역사정보의 총본산’이다.

▲ 맑은정치포럼대표ㆍ정치학박사 이동우

이 나라 정부가 국사편찬위원장에 친일독재를 미화한 역사학자로 알려진 ‘유영익’을 임명하여 국민을 아연 놀라게 했다. 유 위원장은 일제의 식민통치와 이승만을 지나치게 미화해 진보진영의 학자들로부터 수많은 비판을 받아온 인물이다.

실제로 그는 이승만 연구소를 차리고 집필과 강연을 하면서 “이승만은 터키공화국 초대 대통령 케말 아타튀르크, 중국의 진시황, 이스라엘의 모세”라고 비유하는 것도 모자라 이승만이 “세종대왕과 맞먹는 유전자를 가졌던 인물”이라 치켜세우는 등 학자로서의 양식을 의심받을 만한 사고체계를 가진 사람이다.

이 사람이 이번에는 한술 더 뗬다. 유 위원장은 지난 14일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아들이 미국 국적인데 병역기피를 목적으로 미국 국적을 취득한 것 아니냐’는 야당 의원들의 의혹 제기에 대해 “아들이 미국에서 태어나 태어날 때부터 미국 국적”이라며 “한국에 데려와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게 했지만 언어장애가 있어 미국에 다시 가서 교육을 시켰다”고 해명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유 위원장의 아들은 미국 명문대를 졸업하고 국내의 한 명문 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쳤다. 이후 서울에 있는 방송사와 주한미국대사관에서 5년 동안 근무했고, 2007년 10월경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콘텐츠진흥원에 채용됐다. 더 가관인 것은 언어장애가 있다던 아들의 이력서에는 한국어와 영어에 능통하다고 써있다고 한다. 할 말이 없다.

필자는 유 위원장의 아들이 국적을 바꿔 병역을 기피했고 언어장애자가 좋은 직장에 취업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배가 아파서 유 위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할 생각은 전혀 없다.(사퇴시킬 정부도 아니고 사퇴할 사람도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 소위 ‘상류층’의 생활방식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11조 2항을 보면 우리나라는 ‘사회적 특수계급은 인정되지 않고 어떤 형태로도 특수계급을 창설할 수도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재벌과 정치인, 의사와 법조인, 대학교수와 고위공직자들 등은 혈연, 학연, 지연, 혼인 등을 매개로 나름 ‘한국판 상류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 상류층은 시간이 갈수록 견고하게 굳어져서 보통사람들이 진입하려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국 헛수고가 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상류층이 점점 더 무서워지는 것은 이제는 그들이 자신들의 뻔뻔함이 만천하에 드러나도 부인하거나 변명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쿨하게 인정하면서 ‘어쩌라고...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반응으로 대든다는 사실이다. 이 절망감을 어찌 할 것인가.

흔히 ‘귀족(貴族)성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를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고 한다. 우리가 선진국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바로 선진국은 최소한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통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선진국인 이유 중 하나인 예화 한토막이다. 제7대 KBS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역임한 함신익(1957~ )은 1995년 1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한국인 최초로 예일 대학교 음악대학 지휘학과 교수가 되었다.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으로 유학하여 어렵게 공부하던 시절, 자신에게 무명으로 장학금을 대주던 독지가가 있었다. 예일대 교수가 된 함신익은 어느 날 수소문 끝에 그 독지가를 찾아가 말했다. ‘당신의 도움으로 예일대 교수로 까지 성공했으니 이제는 당신에게 은혜를 갚고 싶다’고... 독지가의 대답은 명쾌했다. ‘패스 잇 온’(Pass it on). 네가 받은 만큼 너의 제자, 후배에게 되돌려주라...

베트남의 혁명가이자 정치가로 구(舊)베트남민주공화국 초대 대통령인 ‘호치민’(胡志明, 1890 ~ 1969)은 일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권력을 통해 어떠한 부귀영화도 누리지 않은 지도자이다. 호치민은 폐결핵으로 숨을 거두기전 유언장에 “내가 죽은 후에 웅장한 장례식으로 인민의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내 시신은 화장해 달라”고 했다.

지금도 1억 베트남 국민들로부터 추앙받기에 충분한 그의 인품을 그대로 말해준다. 권력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이 한결같았던 인품 속에서 그의 탁월한 정치력과 추진력이 솟아나왔는지도 모른다. 이런 국가지도자를 두었던 베트남 국민이 부럽다.

우리는 언제쯤 이런 상류층과 국가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까. 초가을의 스모그만큼이나 암울한 대한민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