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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유래] 넓은 평야와 만경강을 닮은 곳, 오산
오명관 기자  |  iscmnews@iscm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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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2.12  23: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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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오산면(五山面)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경지정리가 이루어진 곳으로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오산면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일면과 남이면을 합해 그 중심 마을인 오산리의 명칭을 따 오산면이 되었다. 오산(五山)이라는 이름은 원래 오산리 마을 뒷산 모양이 자라의 형상이라 해서 오산(鰲山)이라고 했지만 자라 오(鰲)자가 너무 어려워 같은 음인 다섯 오(五)자로 대신했다고 한다.

   
 
오산은 넓은 평야와 함께 만경강을 끼고 있어 신중, 농흥, 모산, 회복, 만수와 같이 들녘과 제방, 강과 연관된 이름이 많이 있다.

섬안상이라고도 불리는 오산리 신중(新中) 마을은 1920년대까지만 해도 조수가 밀려와 홍수 등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가 심했다고 한다. 제방을 쌓은 후에는 섬과 같이 고립되어서 ‘섬안상’이라 불렸으며 새롭게 가운데 들어선 마을이라는 의미로 신중(新中)이라 했다고 한다.

장신리 외검(外劍)마을은 바깥마을을 의미하는 박골이라 불린다. 박골의 옛 이름 ‘박올’이 ‘박가올→박갈→박칼’로 변하면서 외향(外鄕)이란 의미는 사라지고 외검(外劍)이 되고 말았다. 이와 비슷하게 영만리 내검(內劍)마을의 경우 안골을 의미하는 안올이 안갈→안칼로 변해 내검(內劍)이 되었다.

목천리 회복(回福)마을은 사행천이었던 만경강의 굽은 물줄기가 돌아 나오는 곳에 보를 막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으로 원래 회복(回栿)이라 해야 맞지만 복(栿) 자가 지명에 알맞지 않아 회복(回福)이라 바꿔 불렀다.

   
 
신지리 만수(萬水) 마을은 만수동이라 불리며 만경강 제방공사 이전까지는 바다의 조수가 밀려들고 큰물이 나면 침수가 되어 물이 차는 마을이라는 의미로 물찬말, 만수동(萬水洞)이 되었다.

이 외에도 야절리로도 불리는 남전리 야동(野洞)마을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야한 동영상의 야동이 아니라, 넓은 들판이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의 야전리(野田里)가 야절리가 되었고 이를 한자화해 야동마을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오산면은 대부분 지역이 만경강 유역의 충적지역으로 이뤄져 농업이 주를 이루고 있는 곡창지역이다. 만경강과 함께 넓은 들판을 품은 오산면은 이제 익산이 서부 지역으로 확장해가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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