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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유래] 속마을 솜리, 번화한 이리(裡里)의 중심
오명관 기자  |  iscmnews@iscm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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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2.20  23:2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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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인화동과 주현동은 옛 이리의 근원이 되는 곳으로 구이리(舊裡里)라고도 불렸다. 바로 이리(裡里)라는 명칭은 ‘속마을, 솜리’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곳이 바로 지금의 인화동과 주현동이 접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이전까지 미개지로 ‘보잘 것 없는 안창의 속마을’을 뜻하던 솜리가 일제 강점기, 호남선 철도가 부설되고 일본인들이 들어와 살게 되면서 급속한 발전을 이루며 이리(裡里)로 발전한 것이다.

   
▲ 인화동에 위치한 남부시장
일제 강점기 본정(本町)으로 불리던 인화동 지역은 해방 이후 본정 일정목(一町目)은 화선동(和善洞)으로, 본정 이정목(二町目)은 동인동(東仁洞)으로 개칭했다가 1961년 화선동과 동인동을 합해 인화동(仁和洞)으로 통합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화동에 위치한 남부시장은 철도교통이 발달하면서 일본인이 들어와 번성했던 시장으로 후에 중앙시장이 들어서며 역을 중심으로 상권이 옮겨가며 새로 생긴 신시장(중앙시장)과 구별하기 위해 구시장이라고 불렀다.

또한 남부시장 일대는 일제 강점기 당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기 때문에 1919년 문용기 열사 등이 주도한 4․4 만세운동이 일어난 곳으로 이를 기리는 순국열사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주현동은 처음에는 후리(후리)라는 뜻으로 뒷실마을로 불렀다. 뒷실마을의 뒷실이 듀실→주실→구실→구슬로 변하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며 구슬고개, 주현(珠峴)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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