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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유래]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신동'
오명관 기자  |  iscmnews@iscm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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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4.17  21: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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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신동(新洞)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새로 생겨난 마을이라 해서 지어진 곳이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소영등, 송내, 신리, 모인의 그 일부를 합해 그 중심마을 이름을 따 신리라 하고 북일면(北一面)에 편입됐다가 1974년 옛 이리시로 편입돼 북일동이라 했다. 1990년 이를 다시 신동(新洞)으로 분리하고 현영리, 만석리, 신용리를 합해 계문동(啓文洞)이라 했다가 1998년 신동과 계문동을 통합해 신동이 됐다.

   
▲ 원광대학교 인근에 있는 대학로 거리
신동 일대는 원광대학교가 자리잡은 신용동과 맞닿아 있는 곳으로 대학생 등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익산에서도 번화한 곳으로 손꼽히는 곳이지만 아직 옛 지명을 간직한 곳들이 남아 있다.

새말은 옛날 북일면 시절 면소재지가 있던 곳으로 새로 생겼다고 해 새말이라 했는데 시가지로 탈바꿈한 지금까지도 그렇게 불리고 있다. 서영(西永)은 서영등리의 준말이다. 익산에는 영등(永登)이라고 불리는 곳이 몇 곳 있는데 서영은 영등이 중 맨 서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영등(永登)이란 본래 마을 뒤의 구릉지대인 등성이가 나지막하게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긴 등성이를 뜻하는 말로 ‘긴등이’로 불리다가 이를 한자화하며 영등(永登)이 되었다고 한다.

   
▲ 원광대학교 교정의 모습
한편 현영동(玄永洞)은 옛날 이 마을에 역(驛)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이야기로 보아 본래 현역리(縣驛里)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역은 역참을 뜻하는 말로 교통과 통신이 불편했던 옛날에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다. 현역리는 바로 한 고을의 말을 먹여 관할하던 마을이란 뜻으로 이것이 훗날 현영리로 변한 것은 아닐까?

옛날 많은 농토를 가진 사람을 일컬어 만석꾼이라 했듯이 만석동(萬石洞)은 넓은 들을 끼고 있는 마을이다. 이렇게 넓은 들을 품은 만석동이지만 포구와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어 신기함을 주고 있다. 만석동에 남아있는 포구 지명, 다가포(多佳浦)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 지명에 포(浦)가 들어간 곳은 작은 배가 드나들던 포구가 있었던 곳으로 다가포에도 예전에는 갯물이 들어와 배가 왕래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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