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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상담사이자 꿀벌청년농부인 박넝쿨
오명관 기자  |  iscm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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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22  00:3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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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뻗어 감아 오르거나 땅바닥에 퍼지기도 하는 식물의 줄기를 보통 넝쿨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 이름 따라 농부가 된 청년이 있으니 본명이 박넝쿨이다.

본 기자와 ‘신비체험농장’ 박넝쿨 대표의 인연은 수 년이 된 가운데 사실 귀농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올해 초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본 기자의 개인 일정이 자꾸 어긋나 차일피일 미루다가 c지난주에 금마면 농장을 찾아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박 대표를 처음 만난 곳은 익산의 한 청소년법인기관이었다. 수염을 기르고 있는 젊은 청년의 인상과 특히 이름 때문에 쉽게 기억할 수 있었는데 현재는 꿀을 재배하는 청년농부로 변신했고, 최근 지상파 방송까지 나오는 등 많은 매체를 통해 보도된바 있다. 지금도 끊임없이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 박넝쿨 대표(사진 = 오명관)

박넝쿨 대표는 처음 귀농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귀농은 우연찮게 시작됐다”면서 “2017년 10월의 마지막 날, 5년 동안 다녔던 청소년법인기관의 사무국장직을 그만 뒀다”고 말한다.

박 대표는 “사실 현장에서 청소년을 만나 상담하고 그렇게 하길 바랐는데 서류와 싸우는 일에 지쳐가고 있었다”면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의 의미가 퇴색돼 간다는 느낌이 들면서 더 이상 신나거나 즐겁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남을 도우며 의미 있는 삶을 살더라도 내가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가며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통해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떠한 앞날의 계획도, 방향성에 대한 고민 없이 과감하게 사표로 던지고 직장생활의 종지부를 찍게 됐다”고 밝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청년농부로 일하면서 청소년기관에서 그토록 하고 싶었던 청소년과 직접 만나 상담하는 상담사로도 활동하고 있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박넝쿨 대표의 “사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위기가정에서 평범하지 않은 청소년기를 거치며 위기청소년, 또는 불우청소년이라는 학창시절에 모범생으로 성장하는 학생이라고 인정받았지만 이중적인 생활의 결과였다”고 회상했다.

또한 “대학에 수시로 합격했지만 학비가 없어 등록을 포기하고 재수한 가운데 아르바이트를 통해 학비를 모았지만 사실 피해의식에 똘똘 뭉쳐 있었다”면서 “그러다가 상담이란 것을 받는 기회를 접했다”고 말했다.

“이후 청소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상담사가 되고자 상담학과를 선택했고 의미 있는 삶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면서 “하지만 대학생활 역시 녹녹치 않았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2학기 등록금 마련이 어려워 학비를 마련할 겸 학교를 휴학하고 부사관 4년의 직업군인으로 생활을 했다”고 말한다.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 : 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 예측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이르는 말)라고 했던가. 평범한 군복무를 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상담심리 전공학과를 다녔다는 자살우려자, 복무 부적응자, 탈영병, 정신과 진료 받는 병사 등 관심병사를 관리하는 부대의 상담 지원관으로 근무하고 국방부 자살예방 전문교관 활동을 하며 훈련보다는 상담을 주 업무로 생활하게 된 것이다.

   
▲ 사진출처 : 박넝쿨 페이스북

박넝쿨 대표는 “수많은 상담자들을 만나며 누구나 심리적으로 어려움에 처할 수 있으며 또 누구든지 옆에서 조력하면 그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현장에서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박 대표는 “하사관 복무 4년이 마감될 쯤에 장기하사관으로 지원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중 청소년 때 치료와 도움의 시기를 놓쳐 뒤늦게 힘들어하는 많은 20대 초중반의 병사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면서 “위기청소년들에게 도움을 주기위한 일을 하고자 제대를 결심하고 현 익산의 한 청소년법인기관 대표였던 현 익산시 청소년수련관 김윤근 관장의 권유로 청소년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됐다”고 한다.

이렇게 약 10년 동안 쉼없이 달려온 박넝쿨 대표는 숨을 고르고자 2017년 11월 제주농협이 주관한 ‘국민수확단’이라는 이벤트에 참여하고자 제주도로 무작정 떠났다.

박 대표는 “이곳에서 감귤도 따고, 포장박스도 나르는 등 일했는데 왕복항공권 지급에 숙박비 지원, 보험가입 지원, 거기에 여행수당까지 챙겨주고 일한 만큼 아르바이트비도 넉넉히 챙겨지니 일하며 쉬며 충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다”고 한다.

특히 “제주도에서 만났던 워킹 홀리데이에 참여한 외국의 청년들을 비롯 작업반 어멍들(어머니의 제주방언), 전국 각지에서 제주도로 귀농한 청년들과의 인연에 나의 인생 두 번째 전환이 시작되는 걸 그 당시에는 눈치 채지 못했다”면서 농부로 가는 길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자극이 됐다고 한다.

박넝쿨 대표는 “귀농한 청년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각자의 재능을 활용해 농촌에서 의미 있는 일들을 해나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면서 “각자의 경험을 토대로 농촌 속에 재능을 활용해 나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라고 못할게 뭐야?’라는 생각이 들면서 농촌으로의 귀농을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박 대표는 결정적으로 충격 받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자신보다 2살 어린 제주양봉협회 사무장의 양봉수업을 들으면서 부터인데 사실 양봉은 박 대표의 할아버지가 양봉을 했기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것.

박 대표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양봉을 하셨고 아버지가 아프셔서 일을 내려놓기 전까지 양봉을 하실 때 가끔 가서 일을 도왔던 경험들이 떠오르면서 점점 나의 귀농 모습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 사진출처 : 박넝쿨 페이스북

제주도의 일정을 마치고 육지로 돌아와 귀농을 알아보던 중 ‘청년창업농’ 선발공고를 접하고 서류심사 통과 후 면접 때 겉에 양봉할 때 입는 방충복을 입고 참석해서 심사위원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문답시간에는 겉의 옷을 벗고 안에 입었던 세미정장으로 변신해 프로페셔널한 차세대 농업인으로써의 태도와 자세를 갖추어 사업의 방향성을 설명한 게 주요했는지 합격했다.

이후 청년창업농 정착지원금은 아무 기반도 없던 나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됐고, 농촌도 브랜드기업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꿈을 크게 꾸고자 ‘농촌기업브랜드 신비’라는 이름으로 상호명을 정해 꿀벌농사를 기반으로 다양한 융복합산업을 이루어 가고자 자신감 있게 첫 발을 내딛었다.

박넝쿨 대표는 “하지만 지난해는 양봉으로 귀농해 이제 막 시작한 가운데 아카시아 냉해 피해와 계속되는 비, 이상 고온현상으로 양봉산업 최악의 해로 기록됐다는 언론의 보도로 위기감만을 안겨주는 해가 돼 아찔한 순간이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씩 배워 나가며 꿀벌들을 건강하게 관리해 ‘신비양봉원’을 통해 적지만 정직하게 생산한 벌꿀과 화분을 채취할 수 있었고 익산시 농업인대학교에서 e비지니스반을 통해 마케팅을 배워 직거래로 소비자들을 만나는 길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아 ‘자연愛신비’로 소비자들과 소통하며 양봉산물을 제공하는 판로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대표는 “신비체험농장의 교육 콘텐츠로 학교에서 꿀벌과 양봉산업, 도시양봉을 소개함과 동시에 생태계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다양한 체험을 통해 교육하고 있으며 귀농청년으로써 청소년 대상의 진로강의를 하는 등 청년창업농이라는 정체성을 갖췄기 때문이었다”고 자부했다.

그는 또 “신비한삶의학교를 통해 상담콘텐츠와 더불어 농촌자원을 바탕으로 평생학습과 대안교육을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켜 나가며 인생탐구생활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청소년뿐만 아닌 대학생, 취업준비생이나 직장인, 퇴직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자신을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곳을 만들고자 한다”면서 “귀농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길라잡이 역할을 하고자 촌스러운 생활이라는 중장기 계획을 세웠는데 생각보다 빨리 시작할 수 있게 됐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넝쿨 대표는 “이렇게 제가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어려웠던 청소년기를 거치다보니 현재 청소년을 이해하며 상담할 수 있었고, 벌꿀농부로 과감하게 할 수 있었던 것 또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일을 도우면서 알았던 일이기에 더욱 큰 도움이 됐다. 어렸을 때 힘들고 어려웠던 그 경험이 오히려 큰 자산이 된 것이다”고 말한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1800년 대 후반에 태어나 1970년 중반에 세상을 떠난 슬랩스틱 코미디의 선구자로 추앙받고 있는 희극인 찰리 채플린이 한 말이 생각난다.

   
▲ 사진 = 오명관

채플린은 태어날 때부터 쉽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의 삶을 보면 남을 웃기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찌보면 모순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그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고 말한 것.

어찌보면 박 대표의 어린 시절 그 당시로 보면 비극일 수 있지만 오히려 그 경험의 힘으로 희극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내용으로 또한 청소년을 위한 상담사로 강의하는 농부가 된 것이라고 단언해도 될 듯 싶다.

현재 상담기법을 토대로 심리검사와 재능파악, 진로컨설팅을 했던 경험을 살려 자신의 재능과 농업의 콜라보레이션, 지역사회와 연계할 수 있는 부분들을 컨설팅해주는 일을 시작했는데 점차 타 시도에서도 연락이 와 그룹 통화를 통해 온라인 컨설팅까지 진행하기도 했다.

박넝쿨 대표는 “농촌에 유능한 청년들이 더욱 많아져 활성화되고 북적북적해졌으면 좋겠다는 꿈을 이루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면서 “현재 익산경찰서와 연계해 선도관리청소년 대상의 인성교육 강사로 활동하며 익산시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는 청소년또래상담자 양성과정 강사로, 익산시 청소년수련관에서 청소년교육컨텐츠 자문과 대안교육위탁기관의 집단상담 및 진로코칭지도자 양성과정 강사로 활동하며 계속해서 건강한 지역사회의 시민들을 육성하는데 이바지하고자 더욱 더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농촌이기에 단순히 노동만으로 먹고사는 것이 아닌 각자의 안에 감춰진 재능을 발견하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과 농촌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연계해 이루고자 하는 꿈을 설정한다면 농촌은 그 누구에게라도 기회의 문을 열어준다는 것을 깨달은 뒤 귀농을 결심했다”면서 “이후로 매일매일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지고 신비한 삶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고 이후로도 머물러 있지 않고 지역사회와 연계하며 어렵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되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청년들과 함께 교류하며 힘차게 도전해 나가 볼 계획이다”고 큰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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