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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유래] 함께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사는 함열(咸悅)
오명관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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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0.31  14:3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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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열(咸悅)은 백제 때에는 감물아현(甘勿阿縣)으로 불리다가 통일신라 때에 함열현(咸悅縣)으로 고쳐졌다고 한다. 이후 1914년 함열면이 되었다가 1979년 함열읍으로 승격됐다.

▲ 함열 전통시장(자료사진)

▲ 함열 전통시장(자료사진)

함열읍은 현재 호남선 철도와 23번 국도가 관통하고 광활한 농경지와 석재산업이 발달한 익산시 북부권의 행정, 경제, 교통의 중심지이다.

함열의 옛 지명인 감물아(甘勿阿)는 짐작컨대 ‘모두가 살기 편안하고 안정된 곳’을 의미하며 이는 오늘날 ‘모두 함께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사는 고장’이란 의미의 함열(咸悅)과 같은 말이라고 한다.

함열읍은 와리(瓦里), 남당리(南堂里), 흘산리(屹山里), 석매리(石梅里), 용지리(龍池里), 다송리(多松里) 등 6개 법정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마을들이 산재해 있다.

현재 함열읍 소재지인 와리(瓦里)는 가마를 굽던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해 ‘디새골’, ‘기와꼴’로 불리다가 ‘와리(瓦里)’가 된 것으로 보인다.

와리 삼양(三陽)마을은 삼양리 또는 벌메라 불린다. 삼양 마을의 지형은 햇볕이 잘 드는 양지로 원래 산양(山陽)으로 부르다 음이 변해 삼양(三陽)이 된 것이다. 순수 우리말로는 벌메라 하는데 볕이 잘 드는 메(山)라는 의미다. 한편 길이 세 갈래로 나 있어 삼거리와 양지의 합친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또한 금성마을은 본래 지형이 칼처럼 생겨 칼재, 검성(劍城)으로 불렸다. 칼을 의미하는 검(劍)자가 친숙한 글자가 아니어서 검(劍) 대신 이보다 익숙한 금(金) 자로 바뀌었다고 한다. 풍수설에 따르면 이곳의 지형이 보검출갑형(寶劍出匣形), 즉 보배스런 칼이 칼집에서 나오는 형국이라고 한다.

다송리 방교(芳橋)마을 역시 지형을 본떠 동네 이름을 붙인 것으로 대개 세 갈래로 갈라진 곳의 지명은 ‘방아다리’로 불리는데 방교란 방아다리의 음과 새김을 일부 따서 표기한 것이다. 상마(相馬) 마을은 마을입구에 심은 2그루의 향나무가 마을의 상징이 되어 ‘향나무 마을’로 불렸다고 한다. 이 지명이 형님을 성님이라고 하는 전라도 지역의 구개음화로 인해 향나무가 상나무로 바뀌면서 ‘상나무 마을’로, 여기에서 다시 상말, 상마로 변한 것으로 추측된다.

석매리 매교(梅橋)마을은 풍수지리에 의하면 매화낙지혈(梅花落地穴), 즉 매화꽃이 땅에 떨어지는 형국이 있다고 하기도 하고 매교(梅橋)라는 다리가 있어 이름이 취해진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이외에도 연못에 용이 살았다 하여 붙여진 용지리(龍池里), 와리의 아랫마을로 밑에 있다해 밑녁이라 한 미력(未力)마을, 샘물이 좋아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다는 정동(井洞, 샘골) 등 마을의 유래를 알 수 있는 지명이 아직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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