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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유래] 시조 한 수 읊조리는 여산면
오명관 기자  |  iscmnews@iscm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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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4.14  00:5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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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앞에 나섰더니
서산(西山)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한 어느 게오
잠자코 호올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별 - 가람 이병기)

익산시 여산면에는 시조 중흥의 기틀을 다지고 시조의 현대적 혁신을 위한 운동을 펼친 시조 시인이자 국문학자인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인 수우제(守愚齊)가 자리하고 있다.

수우제는 여산면 원수리 진사(眞絲) 마을에 자리 잡고 있는데, 진사 마을은 산골짜기에서 유달리 찬물이 끊임없이 흘러 찬실(寒谷)이라 한 것이 참실골이 되면서 이후 이를 한자화해 진사동(眞絲洞)이 됐다고 한다.

   
▲ 여산 가람 이병기 선생 생가
여산면(礪山面)은 백제 때에는 지량초현(只良肖縣)으로, 신라 때에는 여량현(礪良縣)으로 불리다가 조선초 여량현과 낭산현을 합해 여산현(礪山縣)이라 했다. 여산의 여(礪)는 숯돌을 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여산에는 다루기 쉽고 질이 뛰어난 양질의 돌이 생산되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은 것이라 한다.

여산현(礪山縣)의 치소인 여산동헌이 있던 여산리 일대에는 이와 관련한 이름들이 아직 남아있다. 영전(營前)은 아사(衙舍)라 불리는 현청 앞이라 해 부르던 지명으로 동헌에서 오른쪽에 있는 마을이며 아사 너머에 있던 마을은 영너머라 불렸다. 또 창전(倉前), 사창(社倉), 사창앞 등은 여산부의 국가창고인 사창이 있던 곳이라 불린 지명이다.

   
▲ 여산동헌
이 외에도 여산에는 왕비를 배출한 고장을 의미하는 왕비안골이라는 지명이 있다. 여산군사에 따르면 세종 18년에는 태종의 비이자 세종의 어머니인 원경왕후의 외향인 여산현을 군으로 승격했으며 숙종 25년에는 단종비인 정순왕후의 본향이라 해 여산현을 부(府)로 승격시켰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 여산 백지사터
한편 수고개, 쑥고개로 불리는 탄현(炭峴)과 문드래미재는 후삼국시대 후백제의 견훤과 고려 왕건의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흔히 쑥고개, 수고개는 숯구덩이가 있어 숯고개라 불리던 곳을 일컫는데 이곳은 후삼국시대 고려 왕건이 후백제를 치기 위해 군대를 주둔시킨 수실(戍谷)이 있었다고 한다.

또 여산에서 전주로 가는 지름길 중 하나였던 문드르미재에는 고려 왕건의 대군이 주둔하며 전주 공격을 계획하는 한편 후백제의 투항을 기다렸던 곳으로 가파르지 않고 완만한 경사가 있는 이곳에서 소소한 작은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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