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의 요청으로 블로그에서 가져와 게재했음을 밝힙니다]

▲ 선창규씨(사진 = 구영식 기자)

그가 술자리에서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다. 취재차 수년간 만나왔지만 이렇게 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주위에서 '지독하다'는 얘기까지 들을 정도로 강한 사람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어머니에게 구속사실도 알리지 않았어. 미국에 출장갔다고 거짓말했지. 내가 평소 1주일에 두 번은 어머니에게 전화했다고. 근데 구속돼 있던 7개월 동안 전화가 안 오니까 어머니가 '미국은 왜 전화가 안 되냐? 미국 좀 연결해보라'고 했다더라."

6개월의 옥살이에서 풀려난 그는 아내가 미리 사둔 가방을 들고 어머니를 찾아갔다. "어머니, 미국에서 이제 돌아왔습니다"라고 인사한 뒤 가방을 건넸다. 미국으로 출장갔다가 사온 선물이라고 하면서….

광우병 우려 쇠고기 유통, 1·2심 모두 '무죄'

어머니까지 속여야 했던 '기구한 사연'이 선창규(56, 장수군 한우유통사업단장)씨에게 있었다.

선씨는 지난 2009년 2월 SRM(광우병 특정위험물질) 함유 가능성이 있어 폐기명령을 받은 미국산 쇠고기를 호주산으로 둔갑시켜 시중에 유통시켰다는 혐의로 긴급체포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한양유통, 갤러리아백화점, 한국까르푸, 이랜드 홈에버 등에서 28년간 일하며 축산물 유통분야에서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던 그가 졸지에 '광우병 쇠고기를 유통시킨 악덕업자'로 둔갑한 것이다.

당시 수사검사였던 이상억 검사는 구속영장 실질심사에 직접 출석해 "광우병이 의심되는 쇠고기를 1년 반이나 지난 다음에 부하직원을 시켜 원산지를 호주산으로 바꾼 뒤 까르푸 전 매장에 판매한 파렴치한 사람이다"라며 선씨의 구속을 주장했다.

검찰은 선씨를 구속한 이후에 총 세 차례 기소했다. 그 과정에서 '호주산으로 둔갑시켰다'는 내용이 빠졌고, '축산물가공처리법 위반' 사건과는 전혀 관련없는 '탈세 혐의'가 추가됐다. 수사팀은 수사 성과를 인정받아 당시 임채진 검찰총장에게 500만 원의 격려금까지 받았다.

그런데 선씨가 조사받은 과정에서 '플리바기닝'(자백감형제도)이 있었다는 의혹이 나왔다. 선씨의 주장에 따르면, 이상억 검사가 "광우병 쇠고기 유통 사실을 자백하면 세무조사는 면제해주겠다"라고 압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씨는 "나는 광우병 우려 쇠고기를 유통시킨 일이 전혀 없다"라며 수사검사와의 위험한 거래를 거부했다.

법원도 선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그의 광우병 우려 미국산 쇠고기 유통 혐의(1심)뿐만 아니라 금품수수 등 배임수재 혐의(2심)에도 무죄를 선고했다. 이로 인해 '광우병 우려 쇠고기를 유통시킨 악덕업자'라는 낙인만은 지울 수 있었다.

하지만 수사검사와의 위험한 거래를 거부한 탓에 선씨는 벌금 40억 원을 포함해 120억 원의 세금폭탄을 맞았다. 플리바기닝 시도에 실패한 검찰이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를 가지고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에 세무조사를 의뢰한 결과였다. 선씨의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현역 부장검사들을 상대로 한 힘겨운 싸움

▲ 선창규씨가 현역 검사들을 상대로 낸 고소장(사진 = 구영식 기자)

선씨는 지난 2013년 8월 30일 열린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뒤 기자에게 "검찰은 증거도 없이 잡아다가 혐의를 입증할 수 없으니까 다른 건(탈세 혐의)을 털어서 죄를 뒤집어 씌웠다"라며 "저를 광우병 우려 쇠고기 유통 혐의로 구속한 검사를 정말 용서할 수 없다, 수사검사 등을 상대로 법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책임을 묻겠다"라고 '검사를 상대로 한 싸움'을 예고한 바 있다. 이는 5개월이 지난 지난해 1월 현실화됐다.

선씨는 지난 2014년 1월 16일 자신의 사건을 수사했던 김석우(현 서울고검 부장검사) 전 서울남부지검 형사5부장과 이상억(현 서울동부지검 부장검사) 검사를 '피의사실 공표죄'로 고소했다. 그는 고소장에서 "이들은 추측에 근거해 제 혐의를 수사하면서 확실한 증거도 없이 피의사실까지 공표해 오랜기간 정육 유통업계에 종사했던 저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선씨가 지난 2009년 2월 긴급체포된 직후 '광우병 의심 LA갈비 시간차 판매', '유통기한 지난 미국산 쇠고기, 호주산으로 둔갑', '위험한 쇠고기 줄줄 샌다' 등의 자극적인 기사들이 쏟아졌다. 검찰이 그를 기소하기도 전에 피의사실을 언론에 흘린 결과였다. 하지만 검찰은 이 고소건을 무혐의 처리했다.

이어 선씨는 지난해 4월 두 검사를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다시 고소했다. 지난 2009년 2월 12개 장소를 대상으로 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 집행이 위법했고, 그를 체포한 뒤 검사실로 넘기거나 구금하지 않고 불법적인 압수수색 현장을 데리고 다녔다는 이유에서다.

'120억 원 세금폭탄'(벌금 40억 원 포함)을 불러왔던 세무 관련 자료들도 이러한 불법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었다. 항소심 재판부도 "조세포탈 증거의 압수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현역 검사들을 상대로 한 직권남용 고소사건은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군산지청으로, 군산지청에서 다시 서울중앙지검으로 사건이 '왔다갔다' 했을 뿐이다. 선씨는 "왜 그렇게 왔다갔다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라고 답답해했다.

두 차례 대검 감찰과에 진정서를 넣었지만 아직까지도 처분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현역 검사들을 상대로 한 국가배상소송도 기각됐다. 검사들의 피의사실 공표에 책임을 묻기 위해 제기한 고소사건도 무혐의 처분됐다. 현역 검사들을 상대로 한 선씨의 싸움은 이렇게 힘겨웠다.

축산물 유통업자들과 전관예우 변호사가 고소장에 오른 이유

▲ 선창규씨 동생과 축산물유통업자 한아무개씨 나눈 대화 녹취록의 일부. 한씨가 선씨의 재산을 파악해놨다고 말하고 있다.(사진 = 구영식 기자)

그런데 현역 검사들을 상대로 한 직권남용 고소장에는 2명의 검사 외에도 '3명의 사람들'이 피고소인으로 올라와 있다. 전북지역 최대 축산물 가공․유통업자인 박아무개씨와 박씨에게 7억 원의 빚을 진 축산물 유통업자 한씨, 그리고 부장검사출신의 '전관예우 변호사'였던 유아무개씨다. 선씨의 사건을 수사했던 김석우 부장검사와 유씨는 '전북지역' 출신이고, 유씨는 남원지청장을 지냈다.

선씨가 이들을 고소한 것은 자신과 전혀 관련없는 한씨와 박씨의 채무·채권관계가 '거짓 광우병 우려 쇠고기 사건'을 만들었다고 판단하고 있어서다. 박씨에게 7억 원을 빚지고 있던 한씨가 박씨로부터 채무 상환을 압박받자 재력가인 선씨로부터 돈을 뜯어내기 위해 박씨, 유씨 등과 공모했다는 주장이다.

선씨는 고소장에서 "박씨와 한씨, 유씨가 공모해서 저에게 거액의 합의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배임수재, 축산물가공처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처벌받게 하겠다는 해악을 고지해 재물을 교부받으려고 했지만 제가 이를 거부했다"라고 적었다.

선씨의 고소장과 고소이유보충서에 따르면, 한씨와 박씨, 유씨는 검찰 수사를 받지 않기 위한 대가로 7억 원(한씨의 채무액)을 달라고 선씨에게 요구했다. 그런데 선씨가 구속된 이후에는 그 대가를 30억-50억 원까지 올렸다. 검찰수사 정보를 통해 선씨의 재산이 100억 원대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씨와 선씨의 동생이 지난 2009년 5월 9일 만나 나눈 녹취록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한△△ : (선씨 부부) 두 분 앞으로만 등기된 게 상가하고 아파트해서 열 아홉채드만요.
선○ : 그래요?

한△△ : 경기, 서울만, 그것도.
선○ : 네～

한△△ : 그 다음에 가족들 거 다 조사해놨어요. 그래서 총 해놓은 게 스물 아홉건이에요. 그게 검찰에서는 전부 선 부장님 걸로 봐요. 이미 파악된 자료에 의해서.(고소이유보충서 12쪽)

선씨가 지난해 9월 18일 검찰에 제출한 고소이유 보충서에 따르면, 유씨는 지난 2009년 4월 20일 영등포구치소에서 선씨를 접견하면서 이렇게 제안했다.

"박씨 등이 요구한 금액은 50억 원이지만 내가 중간에서 조정해 합의금을 30억 원으로 낮추었다. 나는 부장검사일 때 당신 사건의 수사검사인 이상억 검사의 상관이었다. 30억 원에 합의하면 싹 다 정리해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당신 세무조사, 동생 등 가족들 뇌물수수 혐의로 사건이 확대될 수 있다."('고소이유 보충서' 14쪽)

하지만 선씨는 유씨에게 "차라리 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라며 제안을 거부했다. 그러자 같은 해 8월께 그는 조세포탈 혐의로 추가기소됐다. 유씨 등이 협박한 내용대로 검찰 수사가 진행된 모양새다.

상황이 그렇게 진행됐으니 전북지역 최대 축산물 가공·유통업자인 박씨와 전관예우 변호사, 현역 검사들의 유착관계에 의해 광우병 우려 쇠고기 유통사건이 만들어졌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관련 사건이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판결을 받자 이러한 선씨의 의심은 더욱 강해졌다.

"익산 대통령이 주도한 사건에 검사들이 장단 맞춰"

▲ 선창규씨의 동생과 한아무개씨의 대화내용. 합의금을 '6:2:2'로 나눈다는 내용이 나온다.(사진 = 구영식 기자)

선씨는 사건 공모의 핵심인물로 박씨를 지목했다. 박씨는 현재 야당 소속인 L의원의 후원자이고, 지역 법조계의 스폰서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박씨는 지난 2008년 10월께 선씨를 만난 자리에서 "내 뒤에는 국회의원도 있고, 남원지청장 등을 특별하게 관리하고 있다"라고 자신의 인맥을 과시하면서 "내가 없는 것도 만들 수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선씨는 박씨를 가리켜 "익산 마피아" 혹은 "익산 대통령"이라고 불렀다.

"익산에 여러 차례 내려가서 수소문해보니 박씨는 익산지역에서 아무도 근접할 수 없는 사람이더라고. 권력을 등에 업는 사람으로 소문나 있어. 축산물 관련 사건으로 경찰이나 검찰에 고소해도 수사를 안 한다는 거야. 배경이 워낙 탄탄해서 고소해도 안되는 거지. 익산의 대통령이야."(3월 27일 인터뷰)

선씨는 "박씨는 검사를 움직일 정도로 힘을 가진 사람이다"라며 "저한테 요구한 돈을 '60:20:20'으로 나눠먹는다고 했는데 박씨(60)와 유씨(20) 말고 나머지 20은 누구의 몫이겠나? 나는 그것을 검사의 몫으로 생각하는 거다"라고 주장했다. 한씨와 선씨의 동생이 지난 2009년 5월 9일 만나 나눈 녹취록에도 같은 내용이 나온다.

한△△ : 예. (예를 들어) 지금 10억이잖아요? 그러니까 이 사람 2억 이 사람 2억 이 사람 6억 써주고 왔거든요. 변호사(유씨)한테. 그러면 만약에 예를 들어서 쉽게 얘기해서 10억을 받으면 이 사람 6억, 이 사람 2억, 2억 딱 주고 난 끝나는 거예요.(고소이유보충서 7쪽)

흥미로운 사실은 검찰이 선씨를 지난 2009년 2월 10일 축산물가공처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지만, 기소는 그로부터 두 달이나 지난 4월 10일에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선씨가 광우병 우려 쇠고기 유통을 일관되게 부인했고 증거 자체도 부실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검찰이 선씨와 박씨(한씨, 유씨)가 합의할 시간을 벌어줬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선씨는 "박씨가 '없는 것도 만들 수 있다'고 했는데 진짜로 없는 것을 만들었다"라며 "검찰은 구속영장 재청구 등을 통해 구속기간을 계속 연장해가며 박씨 등이 저에게 돈을 뜯어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줬다"라고 주장했다.

선씨는 "박씨가 주도한 사건에 검사들이 장단 맞추어 춤을 춘 것이다"라며 "그렇게 춤을 춘 부분을 반드시 밝혀야 한다, 검사와 변호사의 유착이 제2의 선창규 사건을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강조했다.

또한 선씨는 "김석우, 이상억 검사는 '가공된 사건'으로 저를 체포하고 구속시켰다"라며 "이로 인해 가족들은 충격과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미국에서 유학하던 딸이 충격받아 학교도 옮겼고, 저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라며 "그런데 이것은 정신과 치료로 안 되더라. 그래서 술로 세상을 사는 거다"라고 말했다.

"그 사건 이후 동창 모임에 한 번도 안 나갔어. 자살도 몇 번 시도했어. 세상을 버리려고. 차라리 죽여주는 게 더 나은데 숨쉬게 만들어 놓아서 고통이야. 검사들은 살인마보다 더 나빠. 살인마는 처벌이라도 받지. 근데 검사들은 승진하잖아. 그들을 용서하라고? 이런 일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나 하는 얘기야. 난 5년 안에 죽을 거야. 그 놈의 분통 때문에…."(3월 27일 인터뷰)

선씨는 "이 억울한 사건을 호소하기 위해 국회, 국가인권위도 방문했지만 귀 기울여준 사람은 없었다"라며 "국가인권위는 검사의 직권남용, 인권침해 부분은 시간이 지나서 조사할 수 없다며 사건을 접수조차 하지 않았다"라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유씨, 한씨 등 공모-돈 요구 부인... 수사검사 "할 말이 없다"

전관예우 변호사 유씨는 15일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한씨와 박씨를 아는 사이지만 한씨의 의뢰로 선씨 고소장을 냈을 뿐이다"라며 "고소장을 냈다는 이유로 나를 연루시키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거액의 합의금을 뜯어내기 위해 공모했다는 선씨의 주장도 "억울하고 말이 안된다"라고 일축했다.

축산물 유통업자 한씨는 16일 전화를 걸어 공모와 합의금 요구 여부를 묻는 기자에게 "그런 소리 하지 말라, 나는 그런 적 없다"라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후 10차례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선씨가 '배후 인물'로 지목한 박씨에게도 16일 회사와 개인 휴대폰으로 10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수사검사였던 이상억 검사는 지난 2012년 2월 1심 판결이 난 이후 "할 말이 없다"라고 말했고, 지난 2013년 4월에는 직원을 통해 "통화하지 않겠다"라고 전해왔다. 김석우 부장에게는 16일 검사실 직원을 통해 전화 연결을 요청했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 직원으로부터 "지금 (검찰) 전체적으로 (검사들과) 통화하기 어렵다"라는 말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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